1949년 이연호 목사에게 쓴 김구의 친필편지

1949년 이연호 목사에게 쓴 김구의 친필편지

[ 이야기박물관 ]

신상현 목사
2022년 01월 12일(수) 12:55
백범 김구 선생이 이촌동교회 이연호 목사에게 전한 친필편지.
이연호목사(우측)와 부인 정용득 여사.
"용산 이촌동교회 이연호 목사에게. 경성 내외에 허다한 교회와 재민이 있으나 숫자가 많지 못한 약소한 금전일망정 귀처 교회에 송정한 것은 이 목사의 투철하신 신앙으로 재민들과 같이 수고하심에 감격한 마음으로 이십만원을 드린 것이니 용도에는 이연호 목사 일인의 의사에 전임 처리하여 주심을 바라나이다. 대한민국 31년 1월 17일 김구"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격동의 시절, 민족 지도자 백범 김구(金九, 1876~1949년) 선생의 친필 편지다. 김구는 용산 이촌동교회 이연호 목사의 빈민사역에 감동해 헌금을 드리면서 이 편지로 이 목사에 대한 두터운 믿음을 전달했다. 예나 지금이나 타인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기의 재산을 내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진대, 이처럼 백범 김구의 전적인 신임을 받은 이연호 목사가 궁금하다.

빈민 목사, 화가 목사로 기억되는 이연호(李淵瑚, 1919~1999)는 춘천고등보통학교시절, '상록회'라는 항일 학생 비밀결사를 조직했던 독립운동가였다. 그러나 1938년 상록회는 일본 경찰에 발각되었고 이연호는 서대문형무소에 약 4년간 수감 되는 고초를 겪는다. 당시 사상범이라는 딱지를 달고서는 현실적으로 진학이 막막했지만,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신학을 하고 목회의 길을 걸었다. 아현동 호반재에서 아이들에게 식사를 공궤하는 사역을 시작한 그는 1945년 대홍수로 이촌동에 정착하게 된다. 홍수로 갈 곳을 잃은 넝마주이, 부랑자, 고아, 과부들이 움막 같은 집에서 너무나도 어렵게 생활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렇듯 그는 빈민들을 외면할 수 없어 아이들 교육에 초점을 맞춘 성나사로교회(현 이촌동교회)를 세우게 된다. 이연호 목사는 1948년 그곳에 의료봉사를 왔던 의사 정용득과 결혼해 평생 소외되고 가난한 자들의 영육을 돌봤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만년의 김구는 여러 교회와 협력하며 빈민구제와 가난한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사업을 지원했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황해도 장연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던 김구 선생에게 빈민들의 성자 이연호 목사는 그 용처를 묻지도 않을만큼 믿음직한 인물이었다. 그렇게 1949년 1월 17일, 김구는 김규식과 함께 이연호목사를 방문해 이 친필편지와 함께 20만원을 헌금했다. 1949년 법원조직법이 공포될 당시 초임 법관의 월급이 1만원이 조금 넘었다고 하니 당시 20만원의 가치가 가늠된다. 전적인 신뢰로 거금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아름다운 사람이 그리운 시절이다.

신상현 목사 / 장로회신학대학교역사박물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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