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유연한 사고와 관용적 자세로 일치

한국교회, 유연한 사고와 관용적 자세로 일치

한국교회사학회 학술대회, 칼뱅의 아디아포라 사상의 기준으로 '사랑 질서 품위' 제시

김성진 기자 ksj@pckworld.com
2021년 06월 07일(월) 08:48
칼뱅의 아디아포라(비본질적인 것) 사상을 근거로 신앙의 본질 이외의 규범과 예식은 시대적인 상황과 교회의 형편에 따라 자유롭게 시행돼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해 비본질적인 사고로 고착돼 있는 한국교회에 다양성과 관용의 자세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지난 5월 29일 비대면으로 열린 한국교회사학회 학술대회에서 '칼뱅의 아디아포라 사상 고찰'을 주제로 발제한 이요한 목사(새문안교회)는 16세기 종교개혁기의 가장 대표적인 개혁자인 칼뱅의 아디아포라 사상에 대한 연구를 통해 오늘날 분열과 대립으로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강조했다.

우선, 그는 칼뱅에 대한 오해를 지적하며 그의 자유와 관용적 자세를 역설했다. "역사적으로 칼뱅은 철장으로 사람들을 다스렸던 제네바의 독재자, 예정론의 교리로 무장한 딱딱한 신학자, 세르베투스를 죽이고 카스텔리오를 추방한 '불관용의 대명사'와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돼 있지만 이러한 이미지는 칼뱅에 대한 단편적인 측면을 통해 형성된 오해와 편견"이라고 지적한 그는 "실제로 칼뱅은 비본질적인 사안에 있어서 아디아포라의 자유를 강조함으로 유연한 사고와 관용적 자세를 가졌다"고 설명했다.

칼뱅의 아디아포라 사상의 중요한 원리를 근거로 그는 교회 예전과 여성의 지위, 교회의 정치제도와 같은 구체적인 신학적 주제에 적용했다. 예전과 관련해 칼뱅은 칭의, 예배, 구원과 같은 신앙의 본질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말씀에 따라 지켜야 하지만, 그 외의 외적인 규범과 예식은 성경에 명확하게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 예전을 시대적인 상황에 따라 교회의 덕을 세우고 유익을 주기 위해 자유롭게 시행할 수 있다고 봤다.

여성의 지도력 문제와 관련해서도 칼뱅은 16세기 시대적, 사회·문화적 한계 안에서 활동하던 남성 종교개혁자로서의 한계를 지니고 있었음에도 여성이 공개적으로 지도력을 발휘하는 문제는 가치중립적인 '아디아포라' 개념으로 봤고 그러기에 칼뱅은 공식적으로 여성이 가르치는 '지도력'을 인정했다고 소개했다. 교회 정치제도와 관련해서도 칼뱅은 '장로제도'를 선호했지만, 교회의 외적인 통치나 관리 조직은 상황에 따라 가변적일 수 있음을 언급하며 영국교회의 감독제에 대해서도 관용적인 태도를 취했다고 설명했다.

칼뱅이 아디아포라 사상을 실제로 적용할 때, 그 기준을 '사랑' '질서' '품위'로 소개했다. 구체적인 예로, 그는 칼뱅이 교회의 예식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할 때, '품위와 질서 유지'를 아디아포라의 기준으로 제시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칼뱅의 입장을 고려하면, 교회 공동체의 질서와 품위에 지속적으로 방해하는 일은 더 이상 아디아포라가 아니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칼뱅의 아디아포라 사상을 근거로 그는 오늘날 분열과 대립으로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한 중요한 원리로 제시했다. 그는 비본질적인 것으로 나눠져 서로 소모적인 논쟁을 벌일 뿐만 아니라 지엽적인 것으로 치열하게 다투고 갈등하는 현실을 바라볼 때, 한국교회는 일치를 위한 중요한 원칙을 제공한 칼뱅의 아디아포라 신학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한국교회가 지역 분할 선교정책, 신학의 다양성, 교회의 권력화 현상이라는 내적 원인과 식민지 잔재의 문제, 반공이데올로기와 신학의 혼란, 선교사들의 귀환과 교권 갈등이라는 외적 원인으로 여러 차례 분열의 과정을 겪었으며 아직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제안은 한국교회를 위해 의미있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김성진 기자



'아디아포라'란?

헬라어로 '비(非)본질적인 것'을 의미한다. 주로 고대 스토아철학자들이 '덕도 아니고 악덕도 아닌 중립적인 것'을 지칭할 때 사용하던 개념이다. 스토아철학자들은 '행복'을 정의하는 방식을 놓고 도덕적인 가치와 도덕에 무관한 아디아포라의 실용적인 가치의 경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윤리적 문제에 집중하면서 아디아포라 개념을 사용했다.

'아디아포라'가 교회사에서 신학적인 중심주제로 등장한 것은 16세기 루터교회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필립주의자들'과 '순수루터주의자들'의 신학적 논쟁에서였다. 그러나 칼뱅과 개혁교회 내에서는 '아디아포라' 논쟁이 첨예하게 일어나지는 않았다.

칼뱅은 '기독교강요'에서 '아디아포라'라는 용어를 한번 사용했다. 이 용어 대신 '아디아포라'의 의미를 가진 '중립적',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것', '중간 혹은 중립적인 것', '외적이고 부수적인 것' 같은 다른 단어들을 자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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