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있는 것으로

내게 있는 것으로

[ 가정예배 ] 2020년 12월 9일 드리는 가정예배

양종모 목사
2020년 12월 09일(수) 00:10
양종모 목사
▶본문 : 사도행전 3장 6~10절

▶찬송 : 289장



중세시대 때 어느 교황이 "과거 초대교회에는 '은과 금이 없다(행 3:6)'고 했지만, 이제는 이렇게 교회에 재정이 풍족하니 걱정 안 해도 되겠다"며 자랑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한 수도사가 한마디 던졌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제 교회에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없어진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영적으로 빈곤한 자와 영적으로 부요한 두 종류의 사람들의 모델이 극명하게 나와 있다. 금보다 더 좋은 것을 가진 자는 세상에 얽매이지 않고 덜 시시한 것을 위해 생명을 걸 이유가 없는 것이다. 가끔 사람은 성전 미문 앞에 앉은뱅이처럼 평생 가난한 인생을 사는 자가 있고 은과 금은 없지만 가장 부요한 자로 누리는 자가 있다.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 시간에 기도하러 올라가다가 성전 미문 앞에 앉아 40년 구걸하는 선천성 장애자를 부자로 만드는 기적을 보여준다. 성전 미문 앞에서 한 번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고 기도의 비밀과 예배의 감격을 알지 못한 채 40살이 되는 동안 물질만 의지하고 살아온 정말 가난한 영혼이었다.

40이란 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간 광야에서 하나님에게 훈련을 받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더 이상 생에 대한 미래의 소망은 없고 절망과 좌절감으로 오늘도 맥없이 구걸하고 있는 이를 향하여 베드로와 요한은 긍휼의 마음으로 주목하여 말했다. 그 때 앉은뱅이는 몇 푼 얻을까 하며 시선을 집중했다.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4~5절)" 그의 관심은 동전 몇 닢이었다. 영혼의 주림을 위한 갈망은 없이 그저 한 푼 동정을 받으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은 은과 금이 없다고 했으니 자기와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은과 금이 없기는 앉은뱅이와 매한가지지만 그보다 더 귀한 더 값나가는 것을 소유하고 나누어 줄 수 있는, 알고 보면 베드로와 요한은 부자였던 것이다. "내게 있는 이것을 내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6절)"

만약 베드로와 요한이 은과 금을 주었다면 앉은뱅이는 평생 배는 부르게 살았을지 모르지만 또한 평생 앉은뱅이로 살았을 것이다. 앉은뱅이는 배고픔보다 더 본질적인 것이 해결 되었는데 그 해결의 비결은 물질에 있지 않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지금 그 앉은뱅이는 예수의 이름으로 걷게 되었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다.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8절)"

은과 금으로 걷게 된 것이 아니었다. 세상 부귀와 명예와 돈으로는 앉은뱅이를 걷게 하지 못 한다. 지금 우리가 감사해야 할 것은 그 때 앉은뱅이를 걷게 한 그 이름이 지금 예배하는 우리들 각 심령 속에 있다는 사실이다. 앉은뱅이로 부요했다면 그 부요는 오래가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의 기도

우리에게 영의 양식을 구하는 지혜를 주시고, 이웃에게 세상 재물을 나누어 주기 전에 예수님을 전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양종모 목사/참좋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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