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

새로운 시작

[ 목양칼럼 ]

이형균 목사
2020년 10월 30일(금) 09:48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설치되기 전 동독에서 서독으로 자유를 찾아 250만 명 이상이 피난을 했다. 그 피난민 중에는 적지 않은 신학자와 목회자들도 있었다. 서독으로 피난 오면서도 섬기던 교회와 성도들을 두고 내려온다는 것이 사역자들에게 얼마나 괴로운 일이었을까! 그런데 이때 동독땅에 목회자들이 부족함을 보고 역으로 서독에서 동독으로 임지를 옮긴 목사가 있었다. 호르스트 카스너 목사이다. 카스너 목사는 정부와 협력하면서도 동독의 체제를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체제 안에서 교회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깊이 고민했다. 그리고 현실주의적 입장을 선택하며 사역에 임했다. 그의 딸에겐 엄격한 신앙교육과 논리적 사유를 훈련시키며 동독 체제의 획일성을 극복하고자 애쓰는 삶을 살았다. 앙겔라 메르켈, 현 독일총리가 바로 그의 딸이다.

20~30년 전 한국교회는 교회학교를 걱정했었다. 이대로 가면 교회학교가 사라진다고 말이다. 3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어떠한가? 염려한 그대로 교회학교는 사라진 곳이 많다. 예상대로 돼 버렸다. 그리고 또다시 예상한다. 이제는 청·장년층이 급감할 것 이라고 말이다. 제발 예상대로 되지 않아야 할 텐 데 예외가 아닐 듯 싶다.

초창기 한국으로 선교를 들어온 선교사들이 전해준 신학은 근본주의 신학이다. 그로 인해 한국교회는 절주와 금연은 기본이고 말씀에 대한 경외심이 특별했다. 이렇게까지 영적으로 성장하고 양적으로 비대해진 것은 우리 토양에 뿌리내린 근본주의 신학의 긍정적인 측면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지금 세상 속에서 비치는 교회는 낙동강 오리알처럼 보인다. 마치 이성과 과학 앞에 위태해진 300년 전 교회를 보는 듯하다. 정체성에 혼돈이 오고, 목회의 자리가 예배당 안에만 있는 줄 알고 사역의 자리가 없다고 난리다. 개혁교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제도권 안에서 곱게 자란 온실 안 화초들 같다. 교인과 세상은 너무나 많이, 빨리 바뀌었는데도 말이다. 진리를 바꾸라는 말이 아니다. 담아내는 그릇이라도 바꿔야 한다는 말이다. 이처럼 교인과 사역자 사이가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시대가 또 있었을까 싶다.

이제 신학을 성도들에게 돌려줘야 할 시기가 온 것 같다. 아니 이미 그런 움직임이 상당하다. 교회 안에서 획일화되어버린 사역자들이 교회 밖 성도들에게 신학을 돌려주고, 그들이 자유롭게 헤엄치도록 돕는 것이 지금 필요한 일이 아닐까? 목회자들은 착각을 버려야 한다. 전문성을 갖추었으면 전문가답게 사역 해야 한다. 경계가 모호할 정도로 희미해져 있다. 강대상에서는 토하는 하늘의 불이요, 강대상 아래서는 사랑의 종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선후배 동료 사역자들을 신뢰한다. 통일이 되면 편안함을 버리고 북으로 올라가는 사역자들이 많을 것이고, 또 좁은 길을 걸어갈 분들이 많을 것을 믿는다. 지금도 묵묵히 길을 걷고 있는 분들이 계시기에 감사하다. 코로나19로 인한 공예배의 어려움 속에서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요즘이다. 모두가 인터넷 세상 속에서 새로운 그릇으로 다시 공평하게 출발 선상에 서 있기 때문이다. 우리 어떻게 해야 할까? 변화되고 변질된 세상은 또 다른 카스너 목사를 기다리고 있다.

이형균 목사/선한이웃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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