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Y칼럼 ]
정꽃송이 청년
2024년 09월 28일(토)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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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신앙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지인으로부터 한 질문을 받았다. "큰 교회가 어떤 교회에요?" 그분의 물음은 어디가 큰 교회인지를 묻는 것이 아니라 '큰 교회' 라는 게 무엇인지를 묻는 물음이었다. 그때 그냥 단순히 "큰 교회는 성도가 많은 교회죠. 교회 규모 자체적으로도 크고 교인도 많은 교회?"라고 대답했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그 이후로 신앙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새신자 교인에게 저 대답이 맞았을까 라는 생각을 계속하게 되었다.
진짜 큰 교회와 작은 교회는 교회의 크기와 교인의 숫자에 비례할까. 그 때 이후로 내 마음속에 그 질문이 떠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성경에서 큰 교회와 작은 교회로 나누는 기준은 없다. 그렇다면 크고 작은 것은 세상의 기준인데 왜 우리 기독교인 안에서도 '더 큰 교회가 되게 해주세요, 성도가 늘어나게 해주세요, 더 큰 성전을 지을 수 있도록 해주세요' 라는 기도를 하는 것일까. 또한 어느 교회를 바라볼 때 그 교회 교인과 크기를 보며 목사님이 참 대단하신 분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렇다면 태어나서 지금까지 시골교회를 다니는 나는 늘 작은 교회에 다니고 있다고 생각했을까? 생각해보면 물론 그렇지 않다. 나는 한번도 우리 교회가 작아서 어떠한 믿음의 역사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예수님께서는 크고 작음을 얘기하실 때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믿음에 대해 얘기하실 때였다. 조금 전까지도 예수님을 향해 바다를 걷던 베드로가 의심으로 인해 바다에 빠져갈 때 '믿음이 작은 자여' 라고 말씀하셨고, 가나안 여자의 고백을 들으시고는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우리는 크고 작음의 기준을 장소와 크기와 숫자가 아닌 바로 보이지 않는 이 믿음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또한 진짜 성전은 바로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한명 한명은 자신의 성전을 이루어야 하며 이 믿음의 사람들이 모여 큰 교회를 만들어야 한다.
아브람은 한명의 아들이라도 낳는 것이 소원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를 '열방의 아버지'가 되며 수 없이 많은 후손들의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셨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지하여 보이지 않는 길을 향하여 걸음을 뗀 그 순간부터 수많은 시간들이 흘러 너를 아브라함이라 하리라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오는 그 순간까지 온전히 필요했던 것은 믿음의 순종 뿐이었다. 아브라함의 어떠한 능력이나 재력, 지식이 필요했다고 하지 않는다. 결국 교회는 그리고 성전인 우리는 자신이 갖춰둔 어떠한 능력과 크기가 아닌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교인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것 같다.
요즘 세상에서 교회의 영향력이 선하고 아름다움으로 나타나지 못한다. 세상은 교회를 작게 여기고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교회를 통해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 교회에서 모인 발이 세상으로 나가지 못하고 교회 안에서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두운 곳에 빛을 내고 필요한 곳에 소금이 될 수 있는 교회가 되기 위하여 우리는 가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길을 떠났던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뜻은 지금도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심을 믿는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어떤 교회가 되고 있을까 생각했다. 하나님께 칭찬 받을 큰 믿음의 성전이 지금 당장 아니더라도 선하게 아름답게 만들어가고 싶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셨던 처음의 모습처럼, 예수님이 말씀하신 거룩한 성전의 모습이 지어져 가기를 다짐한다. 그리고 이 땅의 모든 교회가 '큰 교회' 가 되길 소망한다. 한명의 성도가 마음에 성전을 짓고 살아갈 때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더 큰 믿음의 '큰 교회' 를 만들어 가길 소망한다.
정꽃송이 청년 / 두문포교회
진짜 큰 교회와 작은 교회는 교회의 크기와 교인의 숫자에 비례할까. 그 때 이후로 내 마음속에 그 질문이 떠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성경에서 큰 교회와 작은 교회로 나누는 기준은 없다. 그렇다면 크고 작은 것은 세상의 기준인데 왜 우리 기독교인 안에서도 '더 큰 교회가 되게 해주세요, 성도가 늘어나게 해주세요, 더 큰 성전을 지을 수 있도록 해주세요' 라는 기도를 하는 것일까. 또한 어느 교회를 바라볼 때 그 교회 교인과 크기를 보며 목사님이 참 대단하신 분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렇다면 태어나서 지금까지 시골교회를 다니는 나는 늘 작은 교회에 다니고 있다고 생각했을까? 생각해보면 물론 그렇지 않다. 나는 한번도 우리 교회가 작아서 어떠한 믿음의 역사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예수님께서는 크고 작음을 얘기하실 때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믿음에 대해 얘기하실 때였다. 조금 전까지도 예수님을 향해 바다를 걷던 베드로가 의심으로 인해 바다에 빠져갈 때 '믿음이 작은 자여' 라고 말씀하셨고, 가나안 여자의 고백을 들으시고는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우리는 크고 작음의 기준을 장소와 크기와 숫자가 아닌 바로 보이지 않는 이 믿음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또한 진짜 성전은 바로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한명 한명은 자신의 성전을 이루어야 하며 이 믿음의 사람들이 모여 큰 교회를 만들어야 한다.
아브람은 한명의 아들이라도 낳는 것이 소원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를 '열방의 아버지'가 되며 수 없이 많은 후손들의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셨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지하여 보이지 않는 길을 향하여 걸음을 뗀 그 순간부터 수많은 시간들이 흘러 너를 아브라함이라 하리라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오는 그 순간까지 온전히 필요했던 것은 믿음의 순종 뿐이었다. 아브라함의 어떠한 능력이나 재력, 지식이 필요했다고 하지 않는다. 결국 교회는 그리고 성전인 우리는 자신이 갖춰둔 어떠한 능력과 크기가 아닌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교인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것 같다.
요즘 세상에서 교회의 영향력이 선하고 아름다움으로 나타나지 못한다. 세상은 교회를 작게 여기고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교회를 통해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 교회에서 모인 발이 세상으로 나가지 못하고 교회 안에서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두운 곳에 빛을 내고 필요한 곳에 소금이 될 수 있는 교회가 되기 위하여 우리는 가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길을 떠났던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뜻은 지금도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심을 믿는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어떤 교회가 되고 있을까 생각했다. 하나님께 칭찬 받을 큰 믿음의 성전이 지금 당장 아니더라도 선하게 아름답게 만들어가고 싶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셨던 처음의 모습처럼, 예수님이 말씀하신 거룩한 성전의 모습이 지어져 가기를 다짐한다. 그리고 이 땅의 모든 교회가 '큰 교회' 가 되길 소망한다. 한명의 성도가 마음에 성전을 짓고 살아갈 때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더 큰 믿음의 '큰 교회' 를 만들어 가길 소망한다.
정꽃송이 청년 / 두문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