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도 온전하라

너희도 온전하라

[ 가정예배 ] 2020년 10월 6일 드리는 가정예배

장철수 목사
2020년 10월 06일(화) 00:10
장철수 목사
▶본문 : 마태복음 5장 43~48절

▶찬송 : 304장



유대인들은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라"고 배워왔다. 이것은 그들의 전통이다. 유대인만이 아니라 우리도 대개 이렇게 행동한다. 나와 가까운 이는 사랑하고 나를 해롭게 하거나 괴롭히는 이는 미워한다. 우리는 예수님을 알기 전에 이런 방식으로 살았다. 가족, 친구처럼 친밀한 사람과 선대하는 사람은 사랑하고 반대로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사람은 미워하고 비방하고 외면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르게 말씀하신다(46~47절). 당시 유대인과 종교지도자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어쩌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우리도 여전히 이런 사랑의 방식으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응하고 이웃은 사랑하고 원수는 미워하는 방식은 우리의 삶을 파괴했다. 인류를 미움, 살인과 전쟁의 고통으로 몰아넣었다. 오히려 내게 피해를 준 원수는 더 잔혹한 응징을 해야 했기에 세상은 더 파괴적이었다. 이런 방식의 삶은 인간을 행복하고 평화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과 파괴로 이끌었다. 우리 사회도 진보와 보수로 나누어져 있다. 이런 극단적 현상은 우리를 어느 한 편에 서게 만든다. 당신은 어느 쪽이냐고 묻는다. 한 진영에 속하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그래서 진보라고 하면 보수에서 그를 적이라고 말하며 보수라고 말하면 진보에서 그를 적이라고 한다. 이렇게 아군과 적을 구분하고 서로를 미워하고 대적하게 만든다.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분명한 경계선을 긋는다. 따라서 내 쪽에 속한 내 편은 사랑하고 적, 원수는 미워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산다. 내 편이라면 잘못해도 '정의롭다' 말하고 원수는 의롭게 살아도 '불의하다' 말한다. 내 편이 하는 일은 로맨스고 원수가 하는 일은 불륜이 된다. 같은 일에 대해서 다른 기준이 적용되어 결론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런 일이 내 편이기에, 내가 사랑하는 이웃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반대로 다른 기준이 적용되는 것은 그가 원수이기 때문인 것이다. 이런 잣대로 서로를 바라보니 미워하고 싸우는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은 옳은 것이고 네가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된다. 이런 사고방식,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는 삶은 끊임없는 갈등과 싸움을 일으키고 세상을 파괴적으로 몰아간다.

그래서 예수께서 세상의 방식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방식을 말씀하신다. 그것이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44절)"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처럼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다. 사랑이 확장되는 것이다. 사랑의 경계선을 없애는 것이다. 우리의 사랑은 경계선을 긋는다. 아군과 적군을 구별하여 내 편에 속한 사람은 사랑하고 반대편에 있는 사람은 절대 사랑하지 않는다. 그런데 예수님은 내가 정해 놓은, 내가 그은 사랑의 경계선을 없애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이 선인과 악인에게 같은 빛을 비추고 비를 내려주시는 우리 아버지의 온전함이다. 우리도 하늘 아버지처럼 온전하게 되기를 소망한다.



오늘의기도

갇혀 있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의 지경을 넓혀 주셔서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우리도 온전한 사랑으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장철수 목사/중곡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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