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었다

죽었다

[ 목양칼럼 ]

정현석 목사
2020년 07월 17일(금) 00:00
교회 마당에 멋진 나무 한 그루가 있다. 그 나무는 봄이면 꽃이 피고 겨울에는 멋진 성탄 등불로 치장이 된다.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으면 아름다운 새소리도 들을 수 있다. 그런데 하루는 새소리가 나무 위가 아닌 나무 아래에서 들렸다. 자세히 살펴보니 작은 새 한 마리가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소리였다. 그 새는 나무 위를 바라보며 울뿐 올라가지 못했다. 가까이 다가가도 날지를 못하는 모습에 위를 살펴보니 어디선가 다른 새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려왔다. 떨어진 아기새를 어미새가 애타게 찾는 듯해 보였다. 아기새를 둥지에 올려주고 싶었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둥지가 보이지 않았다. 오래전에 새 한 마리를 새장에 넣었다가 죽어버린 기억이 있어서 이 새도 그냥 놔둬야 하나보다 하고 그냥 두었다.

그런데 7살 난 첫째 딸아이가 계속 아기새가 우는 것을 보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했다. 그래서 딸에게 "집에 두고 싶어도 엄마새가 찾으니까 여기다가 두자"라고 설득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궁금한 마음에 잠시 후 밖을 살펴보니 어둑어둑해지고 어미새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아기새는 한 귀퉁이에서 덜덜 떨며 찬바람을 맞고 있었다. 안 되겠다 싶어 인터넷을 한참 검색해보니 아기새는 달걀노른자를 물에 으깨어주면 된다는 글을 읽고 상자에 신문지를 깔아 새를 집 현관에 두었다. 두 딸아이가 좋다고 한참 들여다보았다. 먹이도 처음에는 콕콕 찍어 먹더니 이내 계속 울기만 할 뿐이었다. 딸아이에게 안정을 취하게 두자 하고 푹신한 화장지도 깔아 주었다. 그리고 상자를 닫아 두었다. 밤에 잠자리 들기 전 현관에 상자를 보니 조용했다. 다음날 새벽예배를 마친 후 살펴보니 화장지 한쪽에 쓰러져 누운 채 죽어있었다. 작은 새 한 마리지만 마음이 아팠다. 딸아이도 상처받을까 봐 유치원 가기 전에 얼른 마당 흙밭에 묻어주었다.

그리고 딸을 유치원에 바래다주며 설명해주었다. "아기새가 하늘나라 갔어." "왜?" "엄마새가 너무 보고 싶어서 외로웠나 봐" 한참을 가만히 있던 딸아이가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처럼 하늘나라 갔구나." 죽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가는 듯한 딸을 유치원 버스에 마중 보내며 내가 어릴 적 어머니에게 질문했던 말이 기억났다. "엄마, 사람은 늙으면 어떻게 돼?" "할머니 되지" "다음에는?" "계속 늙다가 죽지." 사람이 죽는다는 것을 알아버린 그 날 밤 어린 나이임에도 밤새 울었던 기억이 생생히 난다. 그때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왜 그런 얘기를 하냐며 한숨을 한참 쉬시던 것도 기억이 난다.

죽음이란 슬프다. 일단 헤어져야 하기에 슬프다. 작은 생명의 죽음을 통해서도 우리 주변 사람들과 나의 죽음을 생각하기에 슬프다.

얼마 뒤 첫째 딸이 갑자기 할아버지 이야기를 했다. "아빠, 꿈속에서 할아버지를 봤어.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잘 먹고 잘살고 있어." 밝게 이야기하는 딸의 모습 속에 천국에 대한 기쁨이 느껴졌다.

죽음은 새로운 만남도 기대하게 만든다. 어릴 적 죽음을 처음으로 알고 밤새 울었던 7살의 나 자신에게도 이야기해줘야겠다. "죽음 뒤 기쁨의 만남도 있을 거야."

정현석 목사/황지중앙교회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