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여름

추운 여름

[ 목양칼럼 ]

정현석 목사
2020년 07월 03일(금) 00:00
날씨가 더워지다 보면 내가 사는 고원지대 도시인 태백에서는 기대하는 것이 있다. 한 여름밤의 쿨 시네마이다. 태백에서 목회하게 된 지 1년이 넘어가며 짧은 시간이지만 작년 여름에 산을 배경 삼아 관람하던 한여름의 영화는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작년 7월 하순쯤 하루는 성도님들이 영화 보러 가신다며 밖으로 나가시는 모습을 교회에서 보게 되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러 간다고 하시면서 두꺼운 외투에 이불까지 준비해서 가시는 모습이 이해가 안되어 물어보았다. "여름에 영화 보러 가시는데 두꺼운 외투면 덥지 않으실까요?" "아니에요. 추워요." 한여름에 추워진다고 하시니 궁금한 마음에 계속 여쭤보니 돗자리 펴고 야외에서 보는 영화축제라고 설명해주셨다. 긴 팔과 이불이 필요하다는 말은 마음에 담지 않고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가 아닌 하늘의 별자리를 지붕 삼아 보는 영화라는 기대만을 가지고 곧장 가족들과 함께 따라 나섰다.

삼삼오오 모여 넓은 잔디 공터에 돗자리를 펴고 다과를 나누며 어두워지는 산을 배경 삼아 설레는 마음으로 영화를 기다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반소매가 딱 좋았다. 성도님들의 이불과 긴 소매 옷은 여전히 내 관심 밖이었다. 그런데 영화 시작 후 1시간이 지나자 정말 조금씩 추워졌다. 아이들도 옷을 껴입고 아내와 이불을 덮기까지 하였다.

'한여름의 이불이라…'. 이전까지 살던 곳에서는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던 일이다. 그래서 나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긴 소매 옷을 준비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런 일은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리 추울 거라고 주변에서 얘기를 해줘도 웃으며 넘겼을 뿐이었다. 그런데 직접 경험을 하니 주변에 이불과 긴 소매 옷을 입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행히 아내가 챙겨온 옷으로 추위는 피했지만,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방식에서 벗어난 경험을 하며 내가 나도 모르게 내 경험에만 사로잡혀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나의 경험만으로 사로잡힌 생각들이 다시 한번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 내가 모르는 것이 많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이 많다.' 아무리 당연하게 여기는 우리의 경험도 어느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더운 여름이 태백에서는 항상 그렇지 않은 것처럼 우리는 때로 새로운 경험 앞에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고넬료와 베드로에게 보여주신 환상을 통하여 주님과 복음 앞에서는 그 어떠한 인간의 관습과 전통도 무의미하다는 것은 우리의 생각과 경험을 내려놓게 한다. 주님의 말씀을 제외하고 내가 살아왔던 방식이 늘 항상 옳은 것만이 아님을 반짝이는 하늘의 별과 바람으로 나풀거리는 나무를 배경 삼은 스크린 앞에서 깨닫게 되었다. 시원하다 못해 추위를 느끼는 한여름 저녁 영화 스크린이 영화 재미뿐만 아니라 새로운 주님의 말씀도 깨닫게 해주었다. 더워지는 요즘 또 다른 경험을 기대하며 나 자신을 해발 700m에 부는 시원한 바람 앞에 내려놓는다.

정현석 목사/황지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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