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한 목사

무능한 목사

[ 목양칼럼 ]

강흔성 목사
2020년 06월 05일(금) 00:00
강흔성목사
지역 동료 목회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한 목회자가 자신이 시무하는 교회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목회자는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장로이고, 형이 목회자인 든든한 믿음의 집안에서 자랐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해 어렵게 됐을 때도 아버지는 장로로서 목회자와 성도를 잘 섬겼다고 한다. 교회에서 여름성경학교를 하면 아버지는 어려운 중에도 기쁘게 찬조를 하셨고 뒤에서 굶는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애처로움이 컸다. 어려서부터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기에 목사가 되어서도 섬기는 목회를 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교회를 개척하면서 헌금을 강조한 적도 없고, 교회행사에도 성도들에게 재정적 부담을 주지 않는 방향으로 목회방침을 세웠다. 주일 점심식사도 사모님이 몇 년 동안 모든 것을 다 준비해 나눴다. 종 됨이 목회고 종의 리더십이 목회자의 생명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힘들어도 즐거운 마음으로 성도들을 섬겼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성도들이 주일날 식사 후에 설거지가 부담스럽다며 밥을 먹지 말고 컵라면으로 대체하자고 했다. 그래서 컵라면을 준비해서 몇 번 먹더니 이제는 물 끓이고 뒤처리도 번거롭다며 간단하게 빵으로 하거나 집에 가서 먹겠다며 예배가 끝나면 곧바로 가버렸다. 바쁘고 힘들게 살아가는 성도들을 배려해서 주일날 교회 오면 잘 섬겨서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맛보게 하려 했던 목회자는 실의에 빠졌다. 그래서 동료 목회자들에게 아픔을 토로하는 것이었다. 여기저기서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다. 급기야 성도들이 겸손하게 섬기는 목사는 무능한 목사로 보고, 명령하고 다그치는 목사는 카리스마가 있는 것으로 착각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날 목양실로 돌아와 많은 생각을 했다. 성도들을 종처럼 부리는 목사는 카리스마가 있는 목사고, 성도들을 섬기는 겸손한 목사는 무능한 목사로 여기는 목회현장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문득 얼마 전 대형교회를 목회하다 은퇴한 목회자의 강의 중, 교회가 성장하려면 목사는 연기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목사는 천국 배우로서 탁월한 연기력이 있어야 목회에 성공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목사의 카리스마가 연기력이란 말인가. 목자 없는 양처럼 사람들을 측은히 여기시고 병든 자를 만지시며 고쳐주시던 예수님의 사역은 연기(演技)가 아니었다.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던 주님의 표정과 손짓도 연기력이 아닌 순전한 섬김이었다. 오히려 군중들은 예수님에게 연기력을 통해서 휘두르는 카리스마를 요구했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무기력하게 죽고 말았다. 오직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다. 혹자는 목회가 종합예술이고 말한다. 목회학적으로는 연기력을 논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예수님처럼 연기력이 없는 순전한 섬김이 참된 목회리더십이 아닐까. 비록 무능한 목사라고 오해 받을지언정 말이다.

강흔성 목사/수원상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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