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먹방'

그리운 '먹방'

[ 목양칼럼 ]

김유현 목사
2020년 05월 22일(금) 00:00
심방은 일명 '먹방'이다. 찬송과 함께 들려오는 압력밥솥의 김 빠지는 소리는 묘하게 어울리고, 말씀을 전할 때 구수하게 퍼지는 된장찌개 냄새는 둘러 앉은 모두에게 이미 차려진 밥상이다. 집사님은 안절부절 좀 더 맛난 밥상을 위해 촉각이 곤두섰고 진지하다 못해 엄숙하다. 축도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우렁찬 '아멘'을 외치고, 두 세 사람이 부리나케 주방으로 달려 간다. '혹시 이미 순번을 정하셨던가'라고 생각할 정도로 일사분란하다. "아이고 예배가 길어서 찌개가 졸았네!" 집사님이 한 말씀 할 때는 '예배를 너무 길게 드렸구나'라고 미안해 해야 하는 분위기다. 웃음 양념이 가득한 순식간에 차려진 밥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많이 배고프시겠네, 얼릉 잡숴요", "맛이 있는가 모르겠네", "나가서 드시는 것 보다 못하지만, 그래도 내 손으로 목사님 따뜻한 밥 해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얼른 잡숴" 내게는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말을 이어간다. 간신히 "집사님, 같이 드세요"라고 하니, "목사님 뭐 좋아하는지 모르고 그냥 한 것이니 그냥 잡숴" "국, 더 드릴까, 요거 맛난디. 어여 잡숴"라며 쉼없이 말이 이어진다. 게장에 손이 가면 게장 접시가 앞으로, 김치에 손이 가면 김치 접시가 앞으로 다가온다. 목사의 젓가락이 어디로 가는지 집사님의 눈은 쉬지 않고 주시한다. 젓가락이 한 반찬에 두어 번 연달아 가면 "입맛에 맞는 갑네 싸 드릴까?"라고 묻는다. 아직 밥이 그릇에 있는데 옆에는 또 다른 밥 한 공기는 놓여 있다. 하나 하나 어떻게 만들어진 반찬인지 묻지도 않았는데 흥에 겨워 들려준다. 그 말씀이 참 맛깔스럽다. 그 흥에 추임새라도 맞추듯 밥상 위 젖가락은 분주해진다.

가만히 듣고 있다 보면 오늘 먹는 밥상은 몇 년 전 집사님이 담그신 간장과 된장, 고춧가루가 어울려 올라온 것이니 역사가 있는 밥상이다. 정성스런 밥상에 집사님의 구수한 입담까지 더하니 그만 먹어야 하는데, 또 다른 밥공기에 손이 절로 간다.

"여기서 점심 많이 드시고, 저녁 안 묵으면 되지 뭐. 어여 많이 잡숴!" 집사님의 권유를 핑계 삼아 한 술 더 뜬다. 먹다 보니 자꾸 먹게 됐다. 나 집사님은 사람들을 불러 같이 밥 먹는 것을 좋아해서 직접 장을 담그신다. 직접 만드신 고추장을 이집 저집 나눠 주다 보니 정작 당신 집에서 먹을 것이 없어 얻어 먹고 있다고 말한다. 이 말에 모두 박장대소 했다. 식사를 함께 나누자고 권하니, 오늘 윗집과 아랫집 사람들이 초청을 했다며 식사를 마다했다. 친정, 시댁 모두 대가족이다 보니 밥상 차리는 것이 지겨울만도 할텐데 상 차리기가 즐겁다고 말한다. "가족이 먹는 것이 좋고, 구역 식구들이 먹는 것이 좋고, 목사님이 잘 드셔서 좋아요."

이맘 때면 심방을 돌며, 집사님의 "얼릉, 잡숴요"라는 말을 듣곤 했는데, 올 해는 이 말을 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코로나19로 인해 당연하게 생각하고 지나갔던 일상의 소중함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소환해본다.

김유현 목사/태릉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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