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계명을 주노라

새 계명을 주노라

[ 가정예배 ] 2020년 5월 25일 드리는 가정예배

정복돌 목사
2020년 05월 25일(월) 00:10
정복돌 목사
▶본문 : 요한복음 13장 34~35절

▶찬송 : 570장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가시기 전 고별설교를 하신다. 이것은 제자들을 확실히 세우기 위함이다. 사랑에 대해 가르치시는 이 말씀은 아이러니하게도 유다의 배반(21~30절)과 베드로가 부인(36~38절)할 것을 말씀하시는 그 사이에 있다. 이것은 사랑에 대한 예수님의 강조인 것이다. '새 계명'을 주신다고 말씀하신다(34절). 하지만 이 계명은 레위기에 있다(레 19:18). 그런데 왜 새 계명인가? 내용이 달라졌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근원이 되어 있다. 사랑해야 하는 의무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므로 그 사랑에 감격하여 행하는 사랑을 말한다. 이 사랑은 유대인을 넘어선다. 민족적 한계를 넘어 온 인류를 사랑하게 되고 원수까지도 사랑하게 되는 계명이다. 사랑하는 것은 같지만 내용은 전혀 달라진 새로운 계명이다.

현대인은 사랑하는 방법을 잘 모른다.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잘 모른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행한다. 그러나 사랑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의 필요를 알고 그 필요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여야 한다. 그런데 사랑은 그립고, 희생은 어렵다. 또한 현대인은 사랑의 대상을 잃어버렸다.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이 없고, 내가 사랑할 사람도 없다. 그것은 내 마음대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나를 사랑해 줄 사람도 없어졌다. 현대인은 사랑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현대인은 사랑에 굶주려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사랑할 줄 모르기에 사랑하는 일이 적고, 그 결과 사랑의 대상이 없어진 것이다. 제대로 사랑할 때 많은 사람이 사랑에 빠지게 될 것이라 믿는다. 그 이유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 사랑하는 방법을 예수님에게 배워야 한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사랑하라(34절)"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하며 우리를 사랑하셨다. 십자가 사랑이다. 자신을 십자가에까지 내어주신 예수님에게서 사랑을 배워야 한다. 십자가에 나를 내어놓는다는 것은 자기희생이 있어야만 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진정한 사랑을 하려면 나를 십자가에 내어놓은 것 같은 자기희생이 먼저 있어야 한다. 철저한 자기희생이 있을 때만 온전한 사랑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하라고 명하신다.

예수님께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마 22:39)"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말로만 하는 사랑이 아니다. 자기희생이 동반되어야 한다. 사랑하는 이를 위하여 나를 희생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방법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본 받아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사랑을 배우자. 자신을 희생할 때 온전한 사랑을 할 수 있게 된다. 그 사랑으로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할 수 있기 바란다. 그러할 때 우리는 예수님의 기쁨으로 충만하게 된다(요 15:11).



오늘의기도

하나님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시옵소서. 예수님처럼 나를 희생하면서 이웃을 사랑 할 수 있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정복돌 목사/평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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