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감사 그리고 그리움

후회, 감사 그리고 그리움

[ 목양칼럼 ]

최윤철 목사
2020년 05월 15일(금) 00:00
두메산골 가난한 농가에서 열일곱 꽃다운 나이에 중매로 결혼하여 신혼의 꿈도 깨지 않은 열아홉 살, 나물 캐러 다니던 어느 날 눈이 침침해지더니, 다시는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 되신 어머니. 68년을 어둠 가운데 살다 하늘나라로 가셨다.

삼남매의 얼굴을 한 번도 보신 적이 없는 우리 어머니. 그러나 외출할 때 손잡고 길잡이가 되어 드릴 때 말고는 어머니가 앞을 보지 못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다. 음식솜씨도 너무나 훌륭했다. 엄동설한에 얼음을 깨고 맨손으로 빨래를 하고, 우물에서 물을 길어 머리에 이고 언덕 위 집을 오르내리고, 삯을 받고 밭일을 하고, 바느질도 능숙히 해내시는 어머니이셨기에 시각장애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

생활보호대상자로 배급 받는 밀가루를 쌀로 바꾸고, 계를 들어 자식 뒷바라지를 해 중학교조차 진학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태반인 시골에서 어머니는 뭇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필자가 신혼 때 어머니를 7년간 모신 이후로 제대로 모시지도 못했다. 그런데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봐 그러셨는지 3일간 입원 중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후회와 아쉬움만 가득하다.

실명된 후 몇 번의 자살시도 실패 후, 누군가가 교회에 가보라는 말을 듣고 예배당에 첫 발을 내디딘 후 구원의 빛을 보셨기에 어머니는 우리 가문의 선교사이다. 그 옛날 시골에서 초등학교 6년을 수석하고도 가난으로 중학교 진학도 못한 형님은 장로가 되었고, 가사 돌보느라 초등학교 졸업도 못한 누님은 권사가 되었고, 막내는 목사가 되었으니 어머니는 이 땅에서 영광스런 자취를 남기고 떠나셨다.

평생을 기도로 산 어머니는, 숨을 거두는 그 날도 새벽 3시에 습관처럼 새벽기도를 하고 떠나셨다. 어머니의 기도 소리를 들을 수 없음이 큰 아쉬움이다. 어머니는 그토록 고대하는 주님의 품에 안겼으니 이제는 감사하다. 생전에 사랑한다는 표현도 못했던 이 불효자는 이제야 이렇게 말해본다. "세상에서 가장 장한 우리 어머니, 이제 광명한 하늘나라에서 안식 누리소서. 어머니,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4월 1일 장례식 날, 화사하게 만개한 벚꽃이 하늘나라 입성하는 어머니를 환영하듯 사뿐히 춤을 춘다. 어머니가 계시지 않은 첫 어버이날, 무척이나 보고 싶고 부르고 싶은 어머니를 생각하며 이 불효자는 또 눈물 흘린다.

하지만 이제 교회 안에 수많은 어머니를 사랑하며 섬기리라 다짐해본다. 양말에 지폐를 넣어 살짝 전해주시는 집사님, 주일 아침마다 정성 다해 죽을 쑤어 오시는 권사님, 새벽마다 기도의 자리에서 가족보다 목사를 위해 먼저 기도하신다는 권사님, 모두가 내게 허락하신 어머니들이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올수록 교회의 어른들을 더 사랑하리라.

최윤철 목사/시온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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