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마지막 거장 펜데레츠키 잠들다

20세기 마지막 거장 펜데레츠키 잠들다

[ 이신우교수의 음악이야기 ] (4) 추모의 메시지에 담긴 삶의 궤적

이신우 교수
2020년 04월 22일(수) 10:00
폴란드의 작곡가 펜데레츠키. 그는 전후 20세기 현대음악계를 주도했던 작곡가들 중 이 시대에 가장 마지막으로 남은 거장이었다.
지난 3월 29일 폴란드의 작곡가 펜데레츠키(Krzysztof Penderecki, 1933~2020)가 타계했다. 그는 전후 20세기 현대음악계를 주도했던 작곡가들 중 이 시대에 가장 마지막으로 남은 거장이었다. 소셜 네트워크에는 일제히 그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펜데레츠키는 1959년 폴란드 작곡가협회가 주최하는 작곡콩쿠르에서 '다윗의 시편'을 포함한 세 작품이 모두 콩쿠르를 석권하면서 현대음악계에 등장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후 현대음악계는 조성음악의 체계를 완전히 벗어나 논리와 구조, 이성, 형이상학 등의 새로운 예술적 가치를 향한 전위적 실험을 계속해 나가고 있었다. 선율과 화음 등은 해체되었고 음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고 과거 클래식 음악에서 상대적으로 부수적 요소로 취급되었던 음악적 매개변수들이 작품의 성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떠올랐다. 1966년 그의 대표작 '누가수난곡 Passio et mors Domini nostri Jesu Christi secundum Lucam'을 발표할 때까지 펜데레츠키는 적어도 이와 같은 아방가르드적 현대음악계의 주류적 경향 한 가운데에 위치했다.

'누가수난곡'은 작가로서 그에게 근본적 변화가 있음을 알린 첫 번째 곡이었다. 당시 현대음악계는 아방가르드의 주류적 경향이 강했고 삼화음이나 조성을 포함한 음악을 쓴다는 것은 과거로의 퇴행이나 타협을 의미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또한 기독교 정신을 담은 곡은 이성과 과학, 창조성을 억압하는 낡고 진부한 음악으로 취급되기도 했으니 펜데레츠키의 누가수난곡은 이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참으로 과감한 행보가 아닐 수 없었다. 누가복음, 시편, 예레미야애가, 스타바트 마테르(Stabat Mater)와 몇몇 기독교성가 등을 라틴어 가사로 구성한 이 작품에서는 긴장이 극대화된 순간에 예레미야의 탄식이 등장한다. '예루살렘이여 예루살렘이여 주께로 돌아오라'… 복음서의 내러티브와 시편을 통한 그리스도의 내적 고뇌, 예레미야의 탄식의 여정을 거쳐 드디어 힘겹게 도달한 마지막 삼화음 '진리의 하나님' (Deus veritatis)! 1966년 아방가르드적 세계관 한 복판에서 울린 이 수난곡에는 펜데레츠키의 신앙과 기독교적 세계관을 통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음향 실험에서 돌이켜 인간성을 회복하고 다시 감성과 심장으로 음악에 다가가고자 했던 그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그는 교향곡 5번 '한국', 7번 '예루살렘의 일곱 문' 등을 비롯한 8개의 교향곡과 성악, 기악,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수많은 작품을 작곡하였다. 필자는 2009년 그의 교향곡 8번 '덧없음의 노래 Lieder der Verganglichkeit'의 한국초연무대의 현장에 있었다. 아직도 그 때의 감동이 남아 있다. 릴케와 괴테, 헤세 등 19세기 후반 20세기 초 독일시에 의한 12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인생과 죽음, 영원의 메시지를 다룬다. 인생 말년에 접어든 거장의 삶에 대한 관조(觀照)가 녹아 있는 작품으로, 현대음악에서는 들어보기 힘든 깊은 영혼의 울림을 느끼게 한다.

펜데레츠키 타계를 추모하는 소셜 네트워크 글들을 읽다보니 문득 데이비드 브룩스(David Brooks)의 저서, '인간의 품격 The Road to Character'이 생각났다. 그는 서문에서 이력서에 들어갈 덕목과 비교하며 조문(弔文)에 들어갈 덕목에 대해 이렇게 썼다. "장례식장에 찾아온 조문객들이 고인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오는 덕목들로 한 존재의 가장 중심을 이루는 성격들"이라고.

펜데레츠키를 직접적으로 알거나 또는 함께 작업했던 작곡가와 연주자를 비롯하여, 개인적으로는 그를 알지 못하나 한 예술가로 펜데레츠키를 존경해 왔던 음악가들의 추모의 메시지는 예술가로 살아온 그의 삶의 궤적을 보여준다. 그는 서구 현대음악의 주류적 흐름 속에서 자신의 음악을 소신껏 펼치기 주저했던 많은 작곡가들에게 하나의 이정표가 되었다. 용기 있게 그의 길을 갔고, 그는 그 길목마다 그가 받은 탁월한 재능으로 평생토록 음악을 썼다. 실험과 진보의 시대 한 가운데서 인간 본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삶을 통찰하며 성경의 메시지를 듣고자 했던 예술가. 펜데레츠키를 추모하며.



이신우 교수/서울대 음악대 작곡과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