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공포증

시선 공포증

[ 땅끝편지 ] 네팔 편6

이원일 선교사
2019년 11월 26일(화) 00:00
아들과 필자가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를 찾았다.
나에게는 중학교 1학년 아들이 하나 있다. 아들은 자신감이 있지만, 때로는 불안해 한다. 아들의 마음은 여리다. 하지만 때로는 차갑기도 하다. 친구들과 잘 지내는 것 같지만, 학급 친구들 몇 명에 대해서는 분노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너무 귀하고 아름다운 아들이 자기에게 '시선 공포증'이 있다고 말한다. 이전에 네팔 아이들이 자기를 쳐다보면서 웃으며 놀린다는 말을 몇 번 하는 것을 들었다. 나는 모습이 다르기 때문에 그냥 쳐다보는 것 뿐이지 놀리는 것은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아내는 정말로 스쿨버스 안에 있는 네팔 아이들이 지나가면서 아들에게 놀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고 말해주었다. 마음 속에서 눈물이 폭발하는 것 같았다.

'아들의 '시선 공포증'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아이들을 만나서 이야기해야 할까? 학급 아이들을 향한 잠재된 분노를 어떻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아내의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선교지나 타국에 사는 아이들 대부분에게는 '시선 공포증'이 있고, 가장 중요한 처방은 스킨십이라는 것이다. 불안해하는 그 시간에 부드럽고 안정된 포옹이 아이들을 치유한다는 것이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있는 그대로를 용납하고, 받아주고, 인정해 주는 행동이 치유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아들만이 아니다. 이 타지에서 내게도 '시선 공포증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다른 선교사들에게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누구보다 타지에서 시선에 대한 부담을 가졌던 사람이 아브라함이 아닐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고향 땅을 떠나와 가나안까지 왔지만, 여전히 타지인 것은 사실이다. 그는 남방으로 점점 내려가다가 기근이 왔을 때에 약속의 땅 가나안을 멀리하고 아에 안정을 찾아 애굽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리고 약속의 한 축인 사라를 적에게 내주었다.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서 하나님이 지시할 땅으로 가면, 큰 민족이 되고, 복을 받고, 아브라함을 적대시하면, 하나님께서 해결하시겠다(창 12:1~3)"는 계약은 어떻게 보면 아브라함 쪽에서 파기해버렸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계약은 파기되는 것이 마땅하다. 또한 그분이 이루실 계획의 한 부분인 사라를 잃어버리는 절대 절망의 상황이다. 사라가 아니면, 약속의 자녀도 없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전히 그 계약하신대로 아브라함의 적인 바로에게 재앙을 내리시면서, 약속의 계획이 사라지지 않게 사라도 회복하시고, 거부가 되어 나오게 하신다.

아브라함은 어디에서나 타인이었다. 시선 공포증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불안의 상황에서도 계약을 파기하지 않으시고, 버리지 않으시고, 안아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그는 타지에서도 망하지 않았고, 믿음의 조상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들을 가만히 안아주겠다. 실수, 불안, 공포의 순간에도 아들을 끝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안겨서, 아들을 말 없이 안아주겠다. 아브라함을 완성하신 주님을 의지하며 말이다. 아들은 점점 자라나 아빠보다 더 강건하고, 겸손한 주님의 제자로 성장할 것이다.

이원일 목사/총회 파송 네팔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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