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나다나엘아, 너 이스라엘아

너 나다나엘아, 너 이스라엘아

[ 설교를위한성서읽기12 ] 요 1:43-51

김형동 교수
2019년 06월 28일(금) 00:00
요한복음은 독특한 증인들과 풍부한 해석적 정황을 제공한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라는 세례 요한의 공개적 고백에 이어 세례 요한은 예수를 일컬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고 선언한다. 이 선언에 이어(이튿날) 예수의 첫 제자들 가운데 세례 요한의 제자들로 예수를 따른 두 사람 중 하나인 안드레와 그의 형제 베드로가 소개되고, 이어서(이튿날)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과 나다나엘이 소개된다. 이러한 전개는 세상의 구세주 되시는 예수와 그리스도교의 역사에 대한 개관적 그림이다. 빌립은 사마리아 전도를 시작한 인물로 이방 선교를 대표하는 예수의 제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다나엘은 오직 요한복음에서만 등장하는 제자로 그의 정체성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불러일으킨다.

일반적 해석은 나다나엘을 바돌로매와 동일 인물로 간주한다. 아마도 이는 예수의 열두제자 명단에서 빌립에 이어서 바돌로매가 소개되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해석은 나다나엘을 마태로 이해한다. 이는 "하나님이 주셨다"는 나다나엘의 이름의 뜻과 '여호와의 선물'이라는 마태(맛단)라는 이름의 뜻이 같기 때문이다.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요한복음은 그를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증인으로서 요한복음 21장에 등장하는 일곱 제자 가운데 하나로 소개한다. 본문에서 나다나엘을 향하여 "너희"라는 복수를 사용하는 점(요 1:50)은 나다나엘이 요한공동체를 가리킨다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나다나엘을 부르시는 본문의 이야기는 요한공동체의 역사와 신학에 대한 풍부한 신학적 해석을 가져온다.

첫째,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47). 나다나엘을 향한 이 말씀과 하늘에 이르는 사닥다리와 천사의 비전은 야곱의 이야기를 생각나게 한다. 또한 이 말씀은 죄 용서를 받은 자의 복됨을 노래하는 다윗의 시편 32을 암시한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가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시 32:1~2). 바울은 로마서에서 시 32을 인용하면서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이신칭의의 신학을 전개한다: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롬 4:7~8). 주께 자기의 죄를 아뢰고 자기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고 주를 의지하는 자에게는 주의 인자하심이 두른다.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하는 믿음의 공동체 곧 교회는 새 이스라엘이다(시 32:5~6).

둘째,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47). 나다나엘을 향한 이 말씀은 요즘 유행어로 '진짜(로)'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에 합당한 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스라엘은 야곱이 하나님과의 씨름에서 얻은 이름으로 그 뜻은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겼다" 혹은 "하나님이 이기신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비디오(VAR) 판독으로도 어려운 해석이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곳은 이사야 40~55장(제2이사야)으로 하늘 법정에서다. 이스라엘은 이방의 빛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기 위해 택한 종이요, 오직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증거할 증인이라는 것이다: "너희는 알리며 진술하고 또 함께 의논하여 보라 이 일을 예부터 듣게 한 자가 누구냐 이전부터 그것을 알게 한 자가 누구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땅의 모든 끝이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사 45:21~22).

셋째, "더 큰 일을 보리라"(50). 나다나엘에게 더 큰 비전이 제시된다.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51). 이 비전은 야곱의 꿈을 암시하는 것으로 야곱은 하나님의 함께 계심을 경험하고 그곳을 벧엘이라 하였다. 벧엘의 뜻은 '하나님의 집'이다. 요한복음은 예수 자신이 하나님이 거주하는 장소로 하나님의 집, 곧 성전임을 선포한다(요 2:19~21).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고 예수가 하나님이다"는 것을(요 1:14). 사람이 되신 예수는 '하늘의 문'(cf. 창 28:17)이요, 이 땅에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온전히 계시되는 장소이자, 사람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의 거처(성막)이다.

하늘이 열리면 보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보좌이다(계 4장). 보좌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재판법정으로 궁극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증인(이스라엘)으로 서게 될 자리이다. 우리는 예수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 예수는 이 땅에서 아버지께서 하라고 주신 일을 이루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였다. 그것은 사랑이다. 새 이스라엘에게 새 계명을 주셨다. "서로 사랑하라"(요 13:34). 진리되신 예수에게서 우리가 보게 될 것과 봐야 할 것은 곧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는 점이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4~35).

김형동 교수/부산장신대 신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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