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후에도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민주헌법

100년후에도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민주헌법

[ 특집 ] '상해임시정부 100주년, 그 의의와 우리의 과제'(4월 특집) 3. 임시정부가 제정 선포한 '임시헌장' 내용과 성격

윤경로 전 총장
2019년 04월 15일(월) 08:37
1935년에 찍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 1열 왼쪽부터 송병조, 이시영, 김구, 이동녕, 엄기순, 조완구. 2열 왼쪽부터 엄항섭, 양우조, 미상, 안공근, 차리석, 조성환
2019년 올해는 역사적으로 매우 뜻 깊은 해이다. 2·8독립선언(동경)과 국내에서의 3·1독립만세운동 그리고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서 발족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이후 '임정'으로 약칭) 수립 100주년을 맞는 기념비적 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 글은 위의 3대 사건 중 곧 맞이할 '임정' 수립 100주년을 기억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헌법'에 해당하는 '임시헌장 10조'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임정' 수립은 국내에서 3·1독립운동이 발발한지 40일만인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서 수립 선포되었다. 이로서 수천년 내려오던 봉건 왕조와 제국(帝國)의 시대를 마감하고 민국(民國) 곧 대한민국(大韓民國)이라는 주권재민(主權在民) 새 나라가 탄생되었다. 그야말로 혁명적인 역사변혁이 아닐 수 없다. 100주년 행사를 앞두고 3·1운동을 '3·1혁명'으로 부르자는 주장이 강하게 대두되었던 것도 이러한 연유와 배경에서였다. 아무튼 '임정' 수립의 혁명적 성격은 '임시헌장10조' 내용에도 잘 담겨있다.

1919년 4월 11일자로 공포한 '대한민국 임시헌장'은 10개 조항으로 되어 있다.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고 했다. 공화제, 공화정 논의는 1890년대 말 독립협회, 만민공동회 전후시기부터 대두되었지만 그 앞에 '민주'를 붙여 '민주공화제로' 국가 정체(政體)를 공식적으로 제정, 선포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그것도 막연한 공화제가 아니라 일반백성 곧 민(民)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민주(民主)'를 공화제 앞에 내세움으로 새로운 나라, 대한민국은 이전의 봉건왕조시대를 종식시키고 있어 근본적으로 결을 달리하고 있음은 매우 주목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임시헌장 제2조는 "대한민국은 임시정부가 임시의정원의 결의에 의하여 이를 통치함"이라고 하여 의회중심의 내각제를 채택할 것을 밝혔다. 이 조항은 동년 9월 통합정부로 개편되면서 대통령 중심제로 바뀌게 된다. 제3조는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무하고, 일체 평등함"이라고 되어 있다. 이 역시 매우 진취적인 조항이 아닐 수 없다. 과거 봉건왕조사회의 신분계급과 남녀귀천을 전면 부인하며 '일체 평등'을 헌법으로 제정한 것 또한 '혁명적'이라 할 것이다.

임시헌장 제4조는 "대한민국의 인민은 신교, 언론, 저작, 출판, 결사, 집회, 서신, 주소 이전, 신체 및 소유의 자유를 향유함"이라고 했다. 본래 초안에는 "조선공화국 국민은 신교, 언론, 결사 및 집회의 자유를 향유함"이라고 되어 있던 것에 '서신, 주소이전, 신체 및 소유의 자유'를 첨가함으로 자유권을 더욱 확대시켰던 것이다.

제5조는 "대한민국의 인민으로 공민자격이 있는 자는 선거권 및 피선거권을 가진다"고 했다. 이 역시 초안에는 "조선공화국의 시민은 선거권 및 관리가 될 수 있는 권리를 가짐"이라고 되어 있었다. 당대 최고의 이론가이자, 각종 선언문을 기초한 조소앙(趙素昻)이 초안했다는 이 초안에서 우선 남녀 구분 없이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부여했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다. 당시 미국을 비롯한 이웃 일본의 경우도 아직은 여성들에게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주어지지 않았던 사실을 감안할 때 이 또한 혁명적 법규가 아닐 수 없다.

제6조는 "대한민국의 인민은 교육, 납세 및 병역의 의무가 유함"이다. 이 조항은 초안에는 없었던 것으로 새롭게 삽입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 조항은 국민의 의무조항으로 국가운영상 꼭 필요한 법적조항이라 할 것이다. 국가와 정부를 세우는 주요 목적의 하나가 나라를 지키고 국민을 교육시키며 이에 따른 재정부담은 국민이 부담해야 한다는 점에서 마땅한 의무조항으로 필수조건이기 때문이다.

제7조는 "대한민국은 신의 의사에 의하여 건국한 정신을 세계에 발휘하며 진(進)하여 인류의 문화와 화평에 공헌하기 위하여 국제연맹에 가입함"이다. '국제연맹 가입' 문제는 민족자결주의를 천명한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이 제창하였다. 1918년 11월 세계1차대전 종전 직전 민족자결주의 14개 조항과 함께 국제연맹 결성을 제창하였다. 우리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이를 적극 환영하며 국제연맹 가입을 천명했던 것이다.

제8조는 "대한민국은 구황실을 우대함"이다. 이 조항은 초안에는 없었던 것으로 이 조항을 놓고 상당한 논란이 있었다. 몽양 여운형을 비롯한 진보진영에서는 이 조항의 삭제를 주장하였다. 그 이유는 나라를 망친 구황실을 우대한다는 것은 봉건왕조시대를 용인하는 것이기에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당시 임정요인 가운데는 이시영(李始榮), 조완구(趙琬九) 등 구황실 출신 인사도 있었고 당시 국민적 전체 분위기 또한 아직 구황실과 완전하게 단절하거나 배척할 만큼의 상황은 아니어 격론 끝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제9조는 "생명형, 신체형, 및 공창제를 전폐함"이다. 이 역시 초안에는 없었으나 일제의 가혹한 무단통치 하에서 자행된 생명의 존엄성과 신체형 파괴 등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 삽입된 것으로 이해된다. 공창제 역시 일제하에서 묵인된 것이기에 이를 삽입한 것 같다.

마지막 10조는 "임시정부는 국토회복 후 만 1개년 이내에 국회를 소집함"이라고 하여 국토를 회복하면 바로 1년 안에 새로운 의회를 소집 새 정부를 세우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하겠다.

이상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헌장' 10개 조항 내용을 요약 정리했다. 한마디로 매우 진취적이며 '혁명적'인 내용으로 현재 시행되고 있는 우리헌법에 그 정신과 내용이 그대로 전수되고 있다. 그만큼 '임시헌장'의 법사상과 정신은 100년이 지난 지금에 보아도 어느 하나 흠잡을 수 없을 만큼 완벽한 민주헌법 체제를 갖추고 있다. 문제는 이렇듯 훌륭한 법을 제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나 실제 '임시헌장' 법정신이 지난 100여 년간 우리나라와 사회에 오롯하게 시행되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역사적 성찰의 눈으로 바라볼 때 안타깝고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아닐 수 없다 하겠다.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억기념분과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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