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당신들의 천국'인가?

왜 '당신들의 천국'인가?

[ 기독교문학읽기 ] 3. 윤상욱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김수중 목사
2019년 02월 27일(수) 14:20
윤상욱, 그는 외교관이면서도 인문학자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선교의 사명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이는 주님의 지상명령이며 사도들의 고귀한 활동을 계승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교회는 선교의 궁극적인 자리로 아프리카를 떠올린다. 거기는 폭발적 인구 증가 현상 속에 그리스도를 모르는 세대가 이어지고, 절대 가난에 찌든 채 고통받는 다수의 무리, 교육과 의료 등 문명의 혜택을 입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도 아프리카 남부의 작은 나라 에스와티니에 의과대학 설립, 한글학당 개설을 위해 힘을 보태고 싶어 한다. 그런데 그 아프리카를 '당신들의 천국'이라 말하는 한 외교관이 있다.

CBS TV '세상을 바꾸는 시간(세바시)'이라는 강연 프로그램에 출연한 그 외교관은 아프리카에서 직접 근무한 경험을 가진 인문학자이다. 누구보다도 그곳을 잘 아는 그가 직접 이렇게 말한 것이다. "아프리카는 '당신들의 천국'이다"라고. 그가 언급한 이청준 작가의 '당신들의 천국'은 소록도를 배경으로 한 소설로서 천국이 '우리들'의 것이 아니라 '당신들', 곧 섬 바깥에서 이 섬을 저들의 천국이라 말하게 될 바로 그 대상들의 천국일 뿐이라는 배타적 의미를 띄고 있다. 그는 왜 아프리카를 언급하는 자리에 이 소설 제목을 떠올렸을까?

대답은 그가 쓴 책 속에 담겨 있다. 윤상욱,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 우리가 알고 있던 만들어진 아프리카를 넘어서'. 부제에서 밝힌 것처럼 '만들어진 아프리카'에서 벗어나 아프리카인의 입장과 시각에서 아프리카를 살피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요즘 사람들은 아프리카를 블루오션이라 이른다. 아직 알려지지 않고 경쟁자도 없어 유망한 시장이라는 의미다. 아프리카에는 이처럼 높은 수익과 빠른 성장을 보장받는 엄청난 기회가 열려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렇다면 이곳이 과연 누구에게 기회의 땅이란 말인가? 아프리카인이 아니다. 그 땅에서 이윤을 남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 그렇게 기회를 잡아 거대한 대륙 아프리카를 이용해 보려는 당신들이다. 그곳은 그런 당신들의 천국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프리카와 아프리카인들이 겪어온 고통과 모순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아프리카를 생각할 때 먼저 떠오르는 이름들은 리빙스턴, 슈바이처, 이태석 신부 등이다. 물론 그분들은 아프리카를 위해 헌신한 그리스도인들이지만 그 땅의 아픔 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은 아니다. 사실 우리는 아프리카인으로 태어나서 그리스도와 그 대륙을 위해 헌신한 이들의 이름이나 행적을 거의 알지 못한다. 혹시 우리는 선교란 이름으로 아프리카인들에게 시혜를 베푸는 것만을 생각하고 있지 않았을까.

선교의 지침서를 찾아 읽으려 하는 독자들이 있다면 이 책이 그리 적절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아프리카 선교에 마음을 쓰거나 관심을 두고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다소 비판적인 논리를 감수하면서도 이 책을 읽어 볼 필요가 있다. 아프리카를 오랜 시간 동안 지배해 온 유럽 국가들이 성경 구절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노예 제도를 합리화했다던가, 토착 신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기독교를 통한 문명화의 성과를 말해왔다는 대목에서는 일종의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극복하지 않는다면 선교의 참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프리카인들의 빈곤과 폭력, 그리고 끔찍한 재난 속에는 그들을 에워싸고 있는 나쁜 이웃들과 정체성에 대한 왜곡이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저자가 밝힌 것처럼 아프리카를 위해 할 수 있는 것과 해서는 안 될 것들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의 마지막 선교의 자리인 아프리카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우리들의 천국'을 이루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김수중

조선대학교 명예교수, 동안교회 협동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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