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예수뿐이었던 사람 이야기

오로지 예수뿐이었던 사람 이야기

[ 기독교문학읽기 ] 4. 청년의사 장기려

김수중 교수
2019년 03월 20일(수) 10:00
십여 년 전, 젊은 작가 손홍규(1975~ )는 평전이나 위인전을 쓰게 된다면 누구를 다루고 싶은가 하는 질문을 받고 주저 없이 장기려라 대답했다. 당시 30대였던 작가의 마음과 몸은 한 사람의 의사가 사랑했던 것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작가는 자신이 소설가이므로 평전이나 위인전 대신 소설을 썼고, 청년작가의 생동감 넘치는 필치로 인해 청년의사의 헌신적 삶이 새롭게 조명되었다.

'청년의사 장기려', 의사인 장기려(1911~1995)는 영원한 청년이란 의미가 있고 또 이 소설이 격동의 역사와 겹치는 장기려의 청년 시절에 초점을 맞추었으므로 이런 제목을 붙였을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러나 오로지 예수뿐이었던 주인공의 삶에 비추어 볼 때, 청년이라는 단어에서 젊은 날 공생애를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생한 치유 사역을 떠올릴 수 있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와 닮은 삶을 살다 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다루어질 토대가 되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이 지닌 의의는 실로 크다 하겠다.

장기려는 송도고보 학생일 적 하나님 앞에 한 가지 서원을 했다. 자신이 경성의전에 입학할 수만 있다면, 의사를 한 번도 만나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바치겠노라는 것이었다. 그는 외과의사가 된 이후 그 서원대로 낮은 곳을 찾아 전쟁과 가난 속에 내던져진 사람들을 치료한다. 실력이 쌓이고 명성이 높아질수록 그를 부르는 곳이 많아졌지만 그럴수록 그는 자신이 서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 점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혈액이 없어 사람의 목숨이 꺼져가는 것을 무기력하게 지켜보던 자리에서는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절규를 토하기도 한다. "하나님, 당신은 대체 어디에 계신 겁니까? 저 목숨을 이처럼 앗아가도 된단 말입니까? 돈에 눈이 멀어 피를 주지 않는 저들의 죄입니까 아니면 저의 죄입니까, 아니면 진정 이 모든 게 당신의 잘못인 겁니까?"

그의 인생 길목에는 역사적 인물들과 만남의 자리가 펼쳐지고 있다. 스승의사 백인제, 애국지사 김교신, 함석헌, 조만식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함석헌과의 대화야말로 장기려의 깊은 고뇌에 위안을 주는 한 줄기 빛이라 할 만하다. 독립운동에 참여하지도 못하면서 창씨개명까지 강요받고 있다는 그의 고민을 들은 후 함석헌은 진정한 권위에 대하여 말했다. 장기려에게 주어진 권위는 창씨개명을 거부하라는 권위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권위라 하였다. 잠깐 욕됨을 참고 더 많은 사람을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충실한 길이라고 일러주는 함석헌의 권고로 그는 새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주치의로서 이광수를 치료한 일, 그리고 김일성의 충수염을 직접 수술한 이야기도 또렷하게 기술하였다. 김일성이 다급한 목소리로 장기려에게 집도해 주기를 요청하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아시다시피 저는 기독교인입니다. 그래서 수술을 하기 전에는 반드시 내가 믿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장군님께서 그걸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김일성으로부터 대답을 받은 그는 자신 앞에 누워 있는 이 환자의 수술을 인도해주시기를 기도했다. 비록 자신과 뜻이 일치하지는 않지만 가난과 설움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 한 줄기 희망일 수도 있는 이 사내를 도와주시라고 기도했다. 의사 장기려에게는 그 누구든 하나님 앞에 연약한 육신들 모두가 돌봄의 대상일 뿐이었다.

작가는 이 소설의 주인공 장기려에게서 예수를 보았다고 했다. 이 소설을 읽는 우리도 그와 함께 그리스도를 볼 수 있을까? 예수님에게서 받은 사랑을 그분에게 돌려드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영혼의 치유를 통해 그리스도를 만나고 싶은 우리에게 들려오는 질문이다.



김수중 교수(조선대 명예/ 동안교회 협동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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