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의 믿음과 선한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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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문학읽기 ] 9. 곽정효 '하느님과 씨름한 영혼'

김수중 교수
2019년 08월 14일(수) 10:00


광복의 달을 맞을 때마다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이들의 이야기가 가슴을 뜨겁게 적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겨레의 간곡한 기도와 눈물, 그리고 피 흘림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해방을 허락하셨다. 그때까지 독립운동이라는 고난의 역정은 한반도 안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외국 땅 여러 곳에서도 쉬지 않고 계속되었다. 러시아의 동쪽 끝 블라디보스토크, 우수리스크에서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쓰고 마지막으로 목숨까지 바친 믿음의 사람 최재형의 행적 역시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지금도 우수리스크를 방문하는 사람은 안중근 의사의 정신적 지주였던 최재형의 발자취를 대하며 숙연한 마음을 갖게 된다. 그렇지만 최재형의 삶에 하나님이 계셨고, 그 영혼의 고뇌가 하나님과의 씨름이었음을 깨닫는 것은 한 단계 더 높은 관심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것을 알게 해주는 것이 문학의 역할이다. 여류소설가 곽정효는 섬세한 필치로 '하나님과 씨름한 영혼 - 최재형'이라는 작품을 역사적 사실과 연결하여 독자에게 들려준다.

최재형은 양부모 격인 러시아인 선장 블라디미르 부부를 따라 세례를 받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선택하셨음을 확신한다. 그가 세례를 받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예배당은 러시아정교회였으므로 이 소설의 제목도 '하나님'이 아닌 '하느님'으로 쓰였다. 마치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했던 것처럼, 최재형의 삶 역시 하나님과 씨름하다 지친 영혼으로 그려졌다. 이 소설은 파란만장한 그의 일생과 시대적 격변을 다루면서 하나님이 내리시는 빛을 따라 새로운 세상을 지향하고 있다.

그는 구한말 함경도에서 노비의 집안에 태어났고, 가난에 쫓겨 연해주 땅으로 건너가 러시아 사람의 집에서 일했다. 블라디보스토크 항구에서 우연히 상선을 타게 되고 그로부터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만났으며 드넓은 세상과 접촉한다. 최재형은 불쌍한 처지에 놓여 있던 자신을 사랑으로 받아준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이제부터 자기가 만나는 이들을 예수님 대하듯 하겠다는 마음을 갖기 시작한다.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여인, 매사에 폭력적인 사람, 선의를 곡해하거나 심지어 자신을 저격하려는 사람에게까지 사랑과 자비를 베풀려 애를 쓴다. 그는 장사에 탁월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큰돈을 벌어 한인사회를 이끌면서 항일운동에 모든 것을 바친다.

이 작품에는 항일 의병운동에 참여한 실존 인물들이 다수 등장하고 그들의 활동상이 언급된다. 또한 작품의 배경이 되는 러시아 사회의 변화와 민중의 활동 모습도 빠뜨리지 않고 있다. 곧 1905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있었던 '피의 일요일'과 게오르기 가폰 신부의 활약을 그리면서 그의 온화하고도 인간적인 모습을 최재형 동료들의 운동과 결부시켜 줄거리를 구성하기도 했다. 이어서 닥쳐온 러시아 혁명과 레닌의 등장, 이 일련의 변화를 겪으면서 고국을 향한 최재형의 마음은 더 뜨거워졌고 민족을 위한 그의 기도 역시 더욱 깊어갔다.

독립운동과 관련된 주요 등장인물은 '헤이그 밀사'인 이상설, 이준, 이위종과 독립운동가 이범진, 이범윤, 그리고 최재형이 중심이 된 항일의병조직 '동의회'에 속한 안중근, 엄인섭, 김기룡 등 셀 수 없이 많다. 이 소설의 작가는 사학 전공자로서 등장인물들의 자취에 역사적 조명을 밝히려는 의도를 보여준다. 그리고 비유적으로 이 인물들을 두루미의 삶에 빗대었다. 두루미는 날면서 소리를 내는 특성이 있다. 따라서 독수리의 공격 목표가 되고 만다. 지혜로운 두루미는 입에 돌을 물고 소리를 참으며 날개를 편다. 최재형과 독립운동가들은 두루미처럼 돌을 문 채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다 조용히 의의 면류관을 받았다.



김수중 교수/조선대 명예, 동안교회 협동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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