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의 자리에서 돌아온 사람

동성애의 자리에서 돌아온 사람

[ 기독교문학읽기 ] 13. 윤이형의 루카

김수중 교수
2019년 12월 11일(수) 10:00
동성애 문제는 이제 더 숨겨둘 수 없는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사람들은 동성애 문제와 대칭되는 지점에 기독교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이 이슈가 가져올 심각한 사회적이고 가정적인 문제들을 기독교가 막아 주거나 해결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동성애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행위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의 주류도 동성애에 대하여 엄격한 반응을 보인다. 대다수 교회 지도자들은 이른바 젠더 이데올로기의 움직임을 유사 종교운동으로 여기며, 동성애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학습에 의해 습득한 행위로 본다. 따라서 동성애가 성평등이나 소수자 보호라는 명분을 내세우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차별금지법이나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 제정은 동성애 이슈를 인권의 명목 뒤에 숨겨 둘 의도가 있다면서 크게 우려한다.

한편 크리스찬 가운데도 이것은 정체성을 바꾸기 어려운 소수자의 고뇌가 깔린 문제이므로 그들을 이해하고 품어 주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도리라고 보는 판단도 있다. 그렇다면 한국 문학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문학은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소재로 삼고 있지만, 동성애 코드를 사용한 작품은 생소하며 그 숫자도 매우 적다. 그만큼 다루기가 쉽지 않고 민감한 주제라는 반증이다. 여기, 기독교 신앙을 가진 청년이 동성애의 자리에서 방황하다가 다시 교회로 돌아오기까지의 갈등을 다룬 소설이 있다. 기독교 문학의 범위 안에 두고 읽어 내리기가 퍽 고통스러운 소설이지만 진정한 구원의 행로를 찾으려는 주제성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윤이형(1976~ )의 '루카'는 2015년 문지문학상을 받은 단편이다. '나'라는 동성애자가 이미 헤어진 '너(루카)'에 대해 돌아보는 일종의 성찰을 담담한 문체로 실어냈다. 작가는 빛을 향해 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그렇다면 독자인 우리도 이 어둠을 벗어나기 위한 길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작품의 주인공이 모태 신앙으로 태어난 기독교인이란 점에서 더욱 그렇다. '루카'의 본명은 '예성'이다. 목사인 아버지가 '예수'와 '성령'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어준 신앙적인 이름을 지닌 '예성'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 전까지 교회에 다녔고 교회학교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러다가 그가 동성애의 자리로 나가면서 하나님과 교회 공동체, 또 신앙 지도자인 부모를 떠나야 하는 고통이 시작된 것이다.

'루카' 곧 '예성'의 아버지는 아들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외면하기 위해 '루카'가 죽었다고 믿는다. 사랑하는 아들이 게이라는 사실과 자신이 한평생 속해 살아온 교회라는 두 세계를 동시에 감당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그의 머릿속에서 어느 하나는 사라져야 했기에 아들이 세상을 떠났다고 믿는 것으로 혼란을 수습하려 한다. 그는 지구의 반대쪽인 남미에 가서 사자와 호랑이를 손으로 만지는 무서운 경험을 자초한다. 그러면 다른 무서움이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목사임에도 불구하고 불신앙의 늪에 빠지게 되고 도무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알 수 없을 만큼 망가진 사람이 되었다는 고백을 남긴다.

이러한 가족의 고통을 '루카'가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루카'는 동거하는 '나'의 눈을 피해 조카의 돌잔치에 참여하는가 하면, 주일 아침마다 조용히 집을 나서 교회로 향한다. '나'는 결국 하나님과 교회로 돌아간 '너'에 대해 평안하기를 빌며, 끝내 묻지 못한 '루카'라는 이름의 의미를 생각한다. 처음에는 그것이 수잰 베가의 노래에 나오는 아이 이름인 줄 알았지만, 이제는 복음서의 저자인 '누가'를 떠올리고 있다. 이 어두운 세상에서 빛을 향해 가고 싶은 마음으로.



김수중 교수/조선대 명예, 빛누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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