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본래 불학무식…하나님이 이끄셨다"

"난 본래 불학무식…하나님이 이끄셨다"

[ 3.1운동100주년기획 ] 기독교교육사상가 열전 1. 남강 이승훈 <2>열정적인 그리스도인

강영택 교수
2018년 09월 11일(화) 17:53
이승훈이 평북 정주에 세운 오산학교. /출처 네이버
한말이나 일제강점기의 기독교는 당시 인구의 1.3% 정도(1919년 기준)만 믿는 소수의 종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고난의 시기에 민족운동을 이끌었던 이들 중 다수가 기독교인들이었다는 사실은 오늘의 기독교신앙을 돌아보게 한다. 초창기 민족운동을 주도했던 신민회는 상동감리교회 담임목사와 교사들이 중심이 된 기독교정신의 비밀결사단체였다. 105인 사건으로 일제의 감옥에 투옥되어 고초를 당한 다수의 사람들 역시 기독교인이었다. 3·1운동의 지도자 33인 가운데 기독교인은 16명이었다. 당시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자기 개인의 안위만을 위한 삶에서 돌이켜 이웃과 민족을 위해 자신의 삶을 헌신하는 것으로 이해했기에 이러한 현상이 가능했다. 남강은 이러한 신앙의 모습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된다.

민족을 위해 불꽃같은 삶을 살았던 남강의 일생은 매우 역동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다. 쇠락해가던 왕조 말기에 몰락한 선비(혹 비천한 상민) 집안에서 태어난 남강은 생존을 위해 상점들에서 심부름 일을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남강은 나이 43세인 1906년까지 장사를 하여 돈을 벌고 집안사람들을 불러 모아 문중 마을을 만드는 일에 몰두했다. 그러한 그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온 두 가지 사건이 도산 안창호와의 만남과 기독교신앙에의 입문이었다. (사실상 이 둘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도산과의 만남은 앞에서 언급했기에 여기서는 기독교신앙에의 입문에 대해 살펴보겠다.

남강이 1910년 평양의 산정현교회 예배에 참석하여 '십자가의 고난'이라는 설교를 들은 것이 회심의 결정적 계기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1908년 민족운동의 중심 단체였던 신민회 활동을 하면서 그 단체의 다수를 차지했던 기독교인들의 헌신된 삶을 보며 영향을 받았고, 마침내 신앙을 갖게 되었다고도 한다. 그가 신앙에 입문하자 신앙은 그의 일평생 삶을 역동적으로 추동하는 원인자가 되었다.

1910년 남강이 공식적으로 기독교인이 되자 그는 즉시 오산학교의 교육 주지를 기독교교육으로 정하였다. 그에게 있어 신앙은 나라 잃은 울분을 위로해주고 나라를 구하려는 희망의 근거이기도 했다. 그는 성경과목을 수업 중에 가르치게 하고 신앙집회를 정기적으로 학교에서 갖게 하였다. 당시 그 마을에 교회가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자신의 땅을 내어놓았다. 교직원, 학생, 주민들이 함께 힘을 모아 직접 교회당을 건축하였다. 완성된 학교교회는 학교 학생들뿐 아니라 마을 주민들에게도 중요한 곳으로 자리 잡았다. 당시 오산학교에서 신앙이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 한 졸업생의 글이 잘 보여준다.

"나라 잃은 백성으로서 마음 둘 곳이 없었던 스승과 제자들은 새로운 신앙에 돌아와 울면서 기도를 올렸고 목이 메어 주를 찾았다. 학교의 교실 한구석에서 시작한 조그만 모임이었건만 그들의 모임은 날로 불어 경건한 신앙의 불꽃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김기석)

남강은 민족운동으로 인해 몇 차례 투옥되었고, 감옥에서 그의 신앙은 더욱 깊어지게 되었다. 감옥에서 그의 주된 생활은 성경읽기와 기도생활이었다고 한다. 남강의 민족주의와 봉사정신은 기독교신앙으로 인해 순수해지고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당시 다수의 다른 지도자들과 달리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이 변함없이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신앙의 힘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가 죽은 해인 1930년 자신의 동상제막식을 거행하던 날 그가 했던 연설문은 신앙이 남강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내가 오늘날까지 온 것은, 내가 한 것은 조금도 없습니다. 모두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아시는 대로 나는 본래 불학무식합니다. 나는 이 뒤에 선 동상과 같은 사람입니다.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으나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이끌어서 오늘까지 왔습니다. 과연 하나님이 나를 지시하시며 도우실 뿐 입니다. 이 후로도 그럴 줄 믿습니다."

강영택 교수 / 우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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