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결의 힘

다수결의 힘

[ 논설위원 칼럼 ]

김훈 장로
2018년 04월 03일(화) 15:22

민주주의는 지금까지 인류가 만든 가장 보편타당한 정치원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 중심에 '다수결'의 원칙이 있다. 그런데 다수의 의견에 따르는 원리인 '다수결'은 말뜻만 놓고 볼 때 민주주의와 배치된다. 승자가 모든 것을 다 독식하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원전 로마시대에 호민관이라는 직책이었다. 호민관은 당시 로마에서 평민을 대변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처음에 단 두 명에 불과했던 호민관은 나중에는 열 명까지 늘어났는데 이는 당시 의결체제인 '다수결'에 상대적 약자인 평민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시키기 위함이었다. 이런 노력과 배려 덕분에 다수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소수의 의견이 무시되지 않을 수 있었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E.E.Schattschneider)는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갈등을 지배적 위치에 올려놓기 위한 경쟁이며, 이렇게 사회화된 갈등들을 관리하고 조정함으로써 사회 안정을 추구하는 시스템"이라고 정의했다. 따라서 "갈등을 개인들의 문제로 국한시키거나, 사회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억누르는 체제는 민주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민주주의가 다수의 의견을 실현해 내는 훌륭한 제도이긴 하나 그 안에 다양한 계층의 의견과 이익을 대변하지 못한다면 좋은 제도라 할 수 없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정치제도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여기서 '사람을 위해'라는 것은 특정인이 아닌 '모두'의 권리를 보장해 준다는 뜻이다. 그런데 생각하는 것과 원하는 바가 모두 같지 않을 경우, 상대방의 의견과 내 생각을 토론을 통해 맞춰가는 '조율'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어느 사회 어느 집단이든 모두가 만족할 만한 합의점인 '만장일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위치에 따라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지점이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론을 내기위해 최종적인 방법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 '다수결'이다.

어쩌면 '다수결'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현실적회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방안일지 모른다. 모든 이가 '만장일치'로 동의하는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에 근접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안임은 분명하다. 여전히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 다수결의 원칙이 통용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다수결'이 다수가 소수를 억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을 현실 정치에서 종종 보게 된다. 이것은 민주주의라기보다 차라리 폭력에 가깝다. 최후의 조율 수단인 다수결이 빠른 결과를 가져다준다는 매력에 도취해 '표결 지상주의'에 빠지게 된다면 이는 오히려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민주주의는 어떤 의미에서는 결과 이전에  모든 사람을 위한 갈등과 갈등 해소의 과정을 더 중요시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정치는 기본적으로 약자 편에 서는 것이다. 그것이 정치의 핵심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강자보다는 약자의 편에 서려는 선한 본성을 심어주셨다. 기독교야말로 그 어떤 종교보다 약자 편에 서는 종교이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1:25)고 기독교의 역설성을 지적한 바 있다. 하나님이 스스로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오심으로 강자가 아닌 약자의 모습으로 친히 약자 편이 되셨다. 그것이 기독교 교리의 핵심인 것이다.

이제 봄노회 시즌이 되었다. 노회는 교회와 총회를 연결해주는 매우 중요한 교회 정치의 현장이다. 각 노회에서 집약된 의견과 정책이 총회를 통해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단의 노회와 총회 현장이 때로는 강자 독식의 정글논리로 변모하는 광경을 종종 보게 된다. 그것도 가장 민주적이라고 믿는 '다수결'의 힘을 빌어서 말이다.

예수님은 다수를 이끌고 지배하는 정치적 힘이 아니라 약자 편에서 대신 매 맞고 아파하고 함께 울어주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방법으로 세상을 이기셨다.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고난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12:10) 하신 말씀을 마음 한복판에 새기며, 나와 다른 의견에도 경청하고 존중하는 협치를 이루는 노회, 총회를 기대해 본다.

김 훈 장로
본보 전 편집국장ㆍ광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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