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부흥사 빌리 그레이엄 목사 별세

세계 최고의 부흥사 빌리 그레이엄 목사 별세

[ 선교 ] 한국의 교회 부흥과 남북 평화에 기여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8년 02월 27일(화) 09:48
   
 

세계 최고의 부흥사로 20세기 기독교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것으로 평가받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지난 2월21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자택에서 향년 99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그레이엄 목사는 복음주의의 리더로서 전세계적으로 수많은 집회를 열어 전도에 앞장서왔다. 이뿐 아니라 미국 대통령들의 정신적인 스승의 역할도 감당, 일명, '미국 대통령들의 목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을 정도로 정치권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는 린든 존슨, 로널드 레이건, 조지 부시 부자 대통령 등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고, 클린턴 대통령은 1993년 취임식 때 그에게 기도를 부탁하기도 했으며, 1994년 고 닉슨 대통령 장례식 때엔 성서를 낭독하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그를 초청해 조언을 들었으며, 트럼프 대통령 또한, 그의 서거 소식에 경의를 표하며 애도했을 정도로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모든 대통령들이 정신적 스승으로 여겼다.

그레이엄 목사는 1918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서 태어나 휘튼 대학을 졸업하고 1939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49년 L.A.전도대회 때 군중들에게 큰 호응을 받은 후 1950년에는 빌리 그레이엄 복음전도협회를 창설, 대형 전도집회를 열기 시작했다. 이후 세계적인 부흥목사로 자리매김해 신문ㆍ방송 등 매스컴과 해외 집회 사역을 이끌어나갔다.

그는 사역한 60여 년간 185개국에서 총 2억1000만여 명에게 복음을 선포했을 정도로 전세계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레이엄 목사는 특히 한국과도 그 인연이 깊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12월 한국을 방문해 미군을 위로하고 부산에서 집회를 가졌고, 1956년 2월 26일에는 8만여 명의 교인들이 모인 가운데 집회를 가졌다. 특히 지난 1973년 5월 30일부터 6월 3일까지 한국을 방문해 전국 주요 도시를 순회하며 연인원 334만 명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했다. 그해 12월 3일 서울 여의도 집회는 110만여 명이 모여 그의 사역에서 가장 많은 군중이 모인 집회로 기록될 정도다. 그의 1973년 방한은 이듬해 열린 '엑스플로 74대회'와 함께 한국교회 부흥의 가장 중요한 기폭제가 된 것으로 기독교 사학자들은 평가하고 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북한을 방문해 평화의 가교 역할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두 차례 북한을 방문, 1992년에는 조지 부시 대통령의 구두 메시지를 김일성에게 전했고, 1994년에는 빌 클린턴 대통령의 대북 메신저 역할을 담당했다. 북한 방문시 그는 김일성종합대학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설교했다. 그의 방문 이후 김일성은 북핵 시설에 대해 국제 사찰을 허용했으며, 뒤이어 카터 전 대통령이 북핵 협상을 위해 방북할 수 있도록 물꼬를 텄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그레이엄 목사는 1972년 닉슨 전 대통령과 백악관 회동 때 유대인 비하 발언을 한 사실이 2002년 3월 미 국립문서보관소에 의해 공개되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지난 2005년 전도 집회를 끝으로 설교자로서 은퇴한 그레이엄 목사는 자신이 설립한 '빌리 그레이엄 복음전도협회'를 아들에게 물려주었다. 이후 오랜동안 뇌수종, 폐렴, 엉덩이 골절, 전립선 암에 시달렸으며, 2007년에는 아내와 사별했다.

1973년 집회에서 그레이엄 목사의 설교를 통역한 바 있는 김장환 목사(극동방송 이사장)는 "그레이엄 목사님의 전도집회를 통해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했고, 한국교회는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며 "복음을 향한 뜨거운 열정, 잃어버린 영혼을 위한 마음을 가진 20세기 위대한 전도자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은 누구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복음을 위해 헌신했던 분"이라고 애도의 뜻을 표했다.

 

#본보, 1952년부터 그레이엄 방한 소식 상세 보도

창간 72주년의 역사를 지닌 한국기독공보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 처음 한국을 방문

한 1952년 12월부터 그의 방한 소식을 상세하게 보도했다.

본보는 1952년 12월 15일자(제221호) 신문 1면에서 '그래함氏의 사자후-19일 충무로노천강연'의 예보를 시작으로, 22일자 성탄신문에서는 '충무광장에 전교파  운집-하나님의 사신으로 내한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헤드라인으로 보도했다. 또한, 2면에서는 당시 강연했던 '맘문 활짝 열고 그리스도를 영접하라' 제하의 설교 전문을 게재했다. 당시 통역은 한경직 목사였다.

1956년 두번째 한국 방문 때도 본보는 1956년 2월 6일(제356호)호 1면에 그의 방한 소식을 '빌리 그래함 전도집회-초청국가 실정에 응해 수락, 26일 서울운동장서 연합전도 예배'라는 제목으로 헤드라인에 보도했다. 당시 보도에서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아시아 방문여행에 한국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으나 피얼스 목사가 주재하는 세계선명회(지금의 월드비전)의 알선과 한국 NCC의 특별초청에 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기사 중에는 "빌리 그래함 목사는 신앙단체 계통으로는 NAE에 속하는 인물인데 이번 한국에 오게되기는 한국NCC의 초청에 의하였다"는 보도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이념 대립이 지금보다도 극심하던 당시 복음주의 계통의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NCC의 초청으로 오는 것에 대해 교계에서 논란이 일기도 했었다. 이에 대해 본보는 "외국에 있는 NAE의 인사들은 복음을 전하는 방도로서 그 나라의 실정에 의하여 대중적 집회 가능성을 고려하여 초청에 의하는 아량이 있다"고 설명했다.

집회 후 3월 5일자 신문에서는 전도강연에 참여한 엄청난 수의 군중 사진과 함께 이승만 대통령 등 주요 인사들도 집회에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본보는 그레이엄 목사의 아시아 방문 중 일화도 읽을 거리로 보도했는데 인도에서는 목사가 지나는 길에 대기하고 있던 4천여 군중들이 설교를 요청해 듣고 4백명의 결신자를 냈으며, 필리핀 마닐라에서는 3만명이 모인 장소 밖에 1만 명이 추가로 모였고, 가톨릭교회에서는 교인들의 집회참석을 금했으나 많은 이들이 참석해 수백명이 '신교'로 개종했다는 소식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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