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창간 72주년 기획 '성경 속으로 들어가다' <1>

본보 창간 72주년 기획 '성경 속으로 들어가다' <1>

[ 교단 ]

신동하 기자 sdh@pckworld.com
2018년 01월 04일(목) 14:15

본보 창간 72주년 기획 '성경 속으로 들어가다' <1>광야에 가다
【이스라엘ㆍ요르단=신동하 차장】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을 지붕 삼고, 알맞은 온도로 전신을 휘감는 바람을 이불 삼고, 세상의 온갖 잡소리가 사라진 고요함 속에서 하룻밤을 지낸다면?

실제로 현실에 부닥치니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았다. 별빛이 있다지만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암흑에 둘러싸이고, 바람은 눈코를 파고드는 모래바람이고, 고요와 적막은 "내가 고립됐다"는 불안감으로 다가왔다.

그곳은 광야였다. 기자가 광야에 몸을 맡겼다. 본보 창간 72주년 기획취재로 이스라엘과 요르단 성지순례에 나서며 광야 장막 체험에 도전했다.

▲ 이스라엘 마사다 정상에서 바라본 일출. <사진=신동하 차장>

적막이 흐르는 광야에서 할 수 있는 건 침묵과 기도, 그리고 행동 여건이 불편하다고 느낄 때쯤 자연스럽게 입에서 튀어나온 불평이었다. 메마른 광야 한복판에 장막을 치고 출애굽 여정처럼 40년도 아니고 겨우 하루를 보냈을 뿐이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성이 체감됐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40년 광야생활 내내 반복된 하나님에 대한 불신은 현대인들의 일상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모든 걸 맡겨야 하지만 당장 눈앞의 컴컴함을 원망하고 심지어 하나님을 따른 것까지 후회한다. 순종의 깊이는 왕궁이나 애굽이 아닌, 광야나 사막에서 드러난다.


* 마사다 (Masada)
마사다는 유대왕 헤롯의 요새이며, 주후 70년 유대인 1000여 명이 로마군 1만5000여 명에게 게릴라전으로 항전한 곳이다.

바위투성이 구릉에 자리한 천혜의 요새 마사다 인근으로 장막을 쳤다. 마사다 광야에는 수업의 일환으로 장막 체험을 하는 이스라엘 청소년들이 있어 함께 묵었다. 낯선 동양인의 장막 체험을 신기하게 느낀 학생들이 계속해서 말을 걸어왔다.

▲ 이스라엘 마사다 광야에서 장막 체험에 나선 기자. 광야는 텅빈 것 같지만 오히려 빈 마음을 채워준다. <사진=신동하 차장>

장막 안으로 한 발 디디자마자 흙먼지가 풀풀 날렸다. 전날까지 편안한 숙식을 하다 장막을 함께 찾은 순례객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장막 안에서 신발을 벗을지 말지, 침낭을 어떤 배열로 깔지를 두고 몇몇의 논쟁이 있었지만, 만나와 메추라기 같은 저녁식사를 함께 하며 서로를 축복하고 감사의 예배를 드렸다.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도 그러했으리라. 노예로 살았던 애굽을 동경해보기도 하고, 사람들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십부장 등 중간지도자가 세워졌을 것이다.

침낭에 몸을 넣었지만 잠이 쉽사리 오지 않았다. 수시로 들리는 모래바람 소리가 자장가로 느껴질 무렵, 일출 현장을 보기 위한 "기상" 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성지 취재 자문과 안내를 해준 이강근 목사(유대학연구소 소장)는 "광야는 텅빈 것 같지만 오히려 나의 빈 마음을 채워준다"며 "동터오는 광야를 보면 어둠을 환한 세상으로 변화시키는, 매일 세상을 새롭게 여시는 하나님의 생명력이 느껴진다"고 기자를 위로했다.

이강근 목사는 "광야는 풀 한포기 자랄 수 없는 황량한 땅이지만 영성을 깨워주는 영적인 옥토"라며 "광야생활 40년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사울에 쫓겨 광야로 나온 다윗도, 40일간 유대광야에 머무신 예수님도, 1000년의 비잔틴제국의 교회를 지킨 광야의 수도자들도 모두 광야의 영성을 힘입었다"고 설명했다.

마사다 일출을 보며 순례객들과의 성찬식을 위한 새벽 산행이 시작됐다. 이스라엘 청소년들도 일사불란하게 이동했다. 마사다는 현대 이스라엘 건국의 상징으로 학생들의 수업코스일 뿐만아니라 군인들의 마지막 훈련코스이기도 하다. 그들은 마사다에 올라 "No more Masada!" (더 이상 마사다의 비극은 없다)라고 외친다.

▲ 이스라엘 마사다에서 과거 유대인들의 식수 저장법을 체험하고 있는 이스라엘 청소년들. 마사다는 이스라엘 학생들과 군인들의 교육현장이다. <사진=신동하 차장>


* 네게브 (Negev)
세모꼴을 이루고 이스라엘 전 국토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며, 건조하고 강우량이 적다. 실제로 기자가 본 네게브 광야는 한마디로 거칠었다.

성경에서 유다산지가 끝나는 브엘세바 이남지역을 신광야라고 하는데, 바로 네게브 사막이다. 네게브는 히브리어로 남쪽이라는 뜻이며, 황무한 땅을 의미하기도 한다.

▲ 이스라엘 네게브 광야. 이스라엘 국토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며 건조하고 강우량이 적다. <사진=신동하 차장>

이곳에 팀나 계곡이 있다. 철기와 청동기 시대의 구리광산 지역이며, 주전 4000년 경부터 채광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강근 목사는 "팀나에 구리가 있다는 것은 알려졌지만 그리 큰 관심을 얻지 못하다 1930년대 넬슨 글루엑이 팀나가 주전 10세기 경 솔로몬의 구리광산이었다고 발표하면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다"며 "구리광산이 절정에 달한 것은 바로왕 통치 시기인 주전 14~12세기로 보면 된다. 당시 미디안인과 아말렉인이 팀나 계곡을 거대한 구리 생산지로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기자가 현재 몇개 남지않은 수천년 전 파놓은 갱도를 직접 들어가봤다. 구리 원석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구리가 넘쳐나는 곳임이 확인된다. 허리를 펼 수 없는 좁은 공간이라 구리를 캐던 당시 노예들의 노고를 간접적으로 느끼게 된다.

▲ 네게브 광야에 팀나 계곡이 있다. 구리광산 지역으로 주전 4000년경 부터 채광이 시작됐다. 구리광산 갱도 안에는 당시 노예들의 낙서가 벽에 남아있다. <사진=신동하 차장>


* 엔아브닷 (En Avdat)
이스라엘 네게브 지역에 위치한 국립공원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거쳐간 광야 중 하나인 '신광야'다. 이스라엘의 초대 총리인 벤구리온에 의해 개발됐다.

이강근 목사는 "벤구리온 총리는 이스라엘인들에게 좁은땅에서 아랍과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부대끼지 말고 남쪽으로 가자고 강조했다. 그곳이 바로 네게브 광야다"라며 "버려진 황무지를 생명의 땅인 옥토로 바꾼 곳이 엔아브닷이다"라고 설명했다.

▲ 이스라엘 신광야 엔아브닷 시냇가에서 목을 축이는 사슴. <사진=신동하 차장>

엔아브닷은 '아브닷의 샘'이라는 뜻이다. 이곳에서 솟아난 물이 사해로 흘러들어간다. 광야하면 메마름부터 떠올리지만 이곳에는 구석구석 엄청난 샘이 솟아나고 있다.

기자가 30분 정도의 엔아브닷 트래킹 코스를 따라 관찰한 엔아브닷은 광야의 이미지를 깨뜨리는 '풍요로움' 그 자체였다. 입구에서 보면 메마른 광야지만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숲, 오아시스, 동물을 만날 수 있다.

▲ 이스라엘 신광야 엔아브닷에는 광야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게도 풍요로운 오아시스가 있다. <사진=신동하 차장>

이스라엘 정부는 이곳에 사슴 등 동물 147마리를 풀어놓고 수질관리까지 하고 있다. '목마른 사슴'은 사람이 옆에 다가와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냇물을 먹고, 독수리는 날개치며 올라가듯 비상하고 있었다.

이강근 목사는 "엔아브닷은 아주 오래 전에 바다였다고 한다. 오랜 기간 물이 빠져나가며 퇴적되고 깎여나간 큰 돌들만 남았다. 지질구조를 보면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찬양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 와디럼 (Wadi Rum)
이강근 목사와 함께 요르단으로 넘어간 뒤 현지 하대식 선교사를 만나 출애굽 여정 중 한곳인 와디럼 광야로 향했다. 복합적 풍화가 남긴 장엄한 풍경으로 영화 '스타워즈'와 '마션'의 촬영지이기도 해 도착 전부터 호기심을 자아낸 곳이다.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남쪽으로 약 320km 지점에 위치한 와디럼 광야의 흙은 검붉다. 시야가 탁 트인 와디럼 광야는 온통 붉은 기운이 감돌았다. 붉은 색이 돋보여 화성을 다룬 영화의 촬영지로 선택됐다.

▲ 요르단 와디럼 광야의 흙은 온통 붉다. 지프차를 타고 이동하던 기자가 일몰의 순간을 셀프카메라로 담았다. 와디럼 광야의 하늘에는 성경속 구름기둥 처럼 구름이 넓게 퍼져있다. <사진=신동하 차장>

구형의 낡은 지프차에 몸을 싣고 흙먼지를 날리며 광야를 내달렸다. 일몰의 순간 아름다운 석양에 매혹된 것도 잠시, 이내 어둠이 엄습했다. 지프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에 의존해 광야를 내달리니 자연스럽게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생각났다.

광야를 유랑하던 출애굽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밤에도 이동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없었다면, 밤의 이동은 불가능한 것이 당연하다.

기독교 순례객들에게 광야에서의 일몰은 삶의 행로를 조용히 묵상하게 만든다. "광야같은 인생길,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고백이 절로 나온다.

지프차로 광야를 지나다 운전기사가 차량을 잠시 멈추고 내리더니 땅에 엎드려 절을 하는 종교의식을 행한다. 비로소 요르단 한복판 무슬림의 땅에 있다는 것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 출애굽 이스라엘 백성들이 걸었던 요르단 와디럼 광야는 현대에 와서는 영화 촬영지로 각광받는 곳이 됐다. <사진=신동하 차장>


* 유대학연구소 소장 이강근 목사 인터뷰
유대학연구소 소장 이강근 목사는 이스라엘 성지 최고의 전문가로 꼽힌다. 그가 이스라엘에 처음 발을 디딘 배경은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을 거쳐 가나안에 이르는 아브라함의 긴 여정을 직접 걸어보고 싶다"는 꿈에서 비롯됐다.

히브리대학교에 교환학생으로 왔다가 아예 예루살렘에 정착한 후, 이라크 남부에서 이스라엘에 이르는 2500km라는 대장정의 육로 답사를 다녔다. 성경에 언급된 이스라엘 성읍 거의 모두인 1500여 개를 찾았다.

이강근 목사는 스스로를 "이스라엘 광야를 사랑하는 광야 여행자"라고 소개한다. 지금도 낡은 지프차로 광야를 누비며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를 경험한다. 지금까지 중고로 구입한 지프차만 4번을 바꿀 정도로 거친 광야 곳곳을 다녔다.

이 목사는 2007년 이스라엘 히브리대학에서 종교정당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예루살렘 한인교회 유대교회 담임목사이기도 하며 이스라엘 한인회장을 4년간 역임했다.

▲ 성지 최고의 전문가로 꼽히는 유대학연구소 소장 이강근 목사(히브리대 정치학 박사). 그는 이스라엘에서 언제나 태극기가 새겨진 옷을 입고 다니는 남다른 애국심을 갖고 있다. <사진=신동하 차장>

가족으로는 부인 이영란 씨와 헌재(아들), 유정(딸)이 있다. 이 목사 부부는 지난해 한국인 부부로는 처음으로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정식 가이드 자격증을 취득해 화제를 모았다.

현지 유대인과 아랍인 등 100명 넘게 지원한 가이드스쿨에서 최종 선발된 17명에 포함됐다. 이 목사 부부는 2년 간 560시간의 강의와 90회 현장교육 과정을 거치고 구술시험까지 통과했다.

이강근 목사는 "가이드스쿨에서 이스라엘의 역사와 지리, 유대교와 기독교 및 이슬람교, 동식물학, 로마와 비잔틴 문화 등을 배우며 살아있는 성경의 땅을 더 깊이 체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목사는 성지의 참된 의미를 알리고자 '성경의 땅 이스라엘을 만나다'(생명의말씀사)를 출판하기도 했으며, 현재 C채널 '성지가 좋다' 진행과 EBS '세계테마기행' 이스라엘편에 출연하고 있다. 최근에는 C채널 '성지가 좋다' 100회를 맞아 이스라엘과 요르단을 찾은 35명의 순례단을 직접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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