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500주년의 해를 보내며

종교개혁 500주년의 해를 보내며

[ 논설위원 칼럼 ]

이만규 목사
2017년 12월 13일(수) 10:19

전 세계 기독교의 축제요, 뭔가 새 역사가 시작 될 것 같이 기대했던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해가 지나가고 있다. 계획도 많았고 기대도 컸던 한 해 였다. 우리 총회 역시 2년 전부터 기념사업위원회를 구성하고 여러 기념사업을 계획했고 계속되어야 할 몇 가지 사업 외엔 행사 역시 거의 다 마무리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행사도 있었고 사업도 했지만 교회는 개혁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종교개혁의 바른 의미를 다시 생각하고 교회가 어떻게 존재해야 할 것인가는 밝힐 수 있었지만 우리 교회가 실제적 개혁에는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기념 행사만 하다가 500주년이 다 지나가고 말았다. 교단 기념사업의 책임을 맡았던 필자의 책임임을 통감하기도 한다.

문제는 종교 개혁의 역사적 사건을 기념은 하지만 스스로를 개혁할 의지가 부족했었다는 것이다. 남을 바꾸는 혁명보다 자신을 바꾸는 개혁은 어렵다는 것을 실감하기도 했다. 루터를 칭찬하고 그의 개혁 정신은 칭송하지만 그의 개혁을 위한 헌신을 따르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개혁은 자기희생을 요구하는데 애초부터 우린 루터 같은 희생을 원치 않았는지 모른다. 개혁은 낭만적 운동이 아니라 생명을 건 결단으로만 가능한데 아직 우린 너무 배가 부른 것 같다.

지금 우리에게 개혁은 생존 전략이다. 그것이 사는 길이다. 우리 한국교회는 지금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고 있다. 부끄러운 우리의 도덕성, 심각한 내적 갈등, 실망한 교인들의 이탈 등의 내적 문제는 물론이고 선교의 대상인 우리 사회 역시 이젠 더 이상 교회를 구원의 방주로, 거룩한 공동체로 인정하길 거부하고 있다. 시대정신의 세속화나 이념적 좌경화 때문이기도 하지만 세상의 비춰진 교회의 생얼굴(민낯) 때문일 것이다.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신앙의 절대 가치도 성역으로서의 교회의 거룩성도, 성직자의 구별성도 인정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이는 마치 이스라엘의 범죄로 하나님이 떠난 성전이 바벨론의 군화 발에 유리되었듯이 거룩성을 잃어버린 교회가 세속권력의 지배아래 놓이게 된 것이 아닌가 깊은 반성이 필요한 것이다.

종교인의 과세 문제는 단순히 국가의 세수를 늘리기 위한 문제가 아니고 국민으로서의 평등한 납세 의무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이젠 더 이상 종교인들의 활동을 세속권력으로부터 자유한 성역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우리 시대의 가치관의 반영이다. 종교인 과세 문제가 순전히 우리 개신교를 겨냥한 정책임은 누구나가 다 아는 일이다. 더 이상 성역이나 성직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시대정신의 반증이다.

교회는 종교사업이고 목회자는 봉급을 받기 위해 일하는 노동자(삯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회적 인식의 표현이다. 사회가 지탱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역이 있어야 하고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기대고 찾아야 할 거룩한 영역이 있어야 하지만 교회는 더 이상 거룩한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종교(교회)의 역할과 사회적 순기능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밖에 버리어 사람들에게 밟힌다고 하신 주님의 경고를 실감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시대정신의 변화나 정부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와 성직자 스스로가 심각한 자기반성과 자기 개혁을 통하여 거룩성을 회복하지 않으면 생존이 어렵다는 시대적 경고이다. 그래서 개혁은 사업이 아니라 생존이다.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의 해는 지나가지만 그러나 우리 교회가 다시 거룩한 교회가 되고 원형교회로 돌아가는 개혁은 우리의 생존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교회는 거룩해야 한다. 개혁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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