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친구들을 주십시요"

"우리에게 친구들을 주십시요"

[ 논설위원 칼럼 ]

문정은 목사
2017년 12월 06일(수) 10:29

1910년 영국 에딘버러에서 세계 선교 역사의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 세계선교사협의회(World Missionary Conference)가 열렸다. 이 회의를 위해 세계 전역에서 1200명의 교회 대표들이 모였는데, 이 가운데에는 소위 'younger churches'(신생 교회) 대표 17명만이 참석했다. 이들 중 후에 인도 최초의 성공회 감독이 되신 빅터 아자리아 (V. S. Azariah) 사제께서 아시아인으로는 유일하게 대회 연설자로 단상에 올라 남기신 참 의미 있는 말씀이 있다.

"여러분들은 가난한 이들에게 먹을 음식을 주었습니다. 여러분의 몸이 타 부서지도록 헌신하였습니다. 우리는 이제 여러분의 사랑을 요청합니다(We also ask for your love.). 우리에게 친구들을 주십시요! (Give us friends!)"

왜 "우리에게 친구들을 주십시요!"(Give us Friends)라는 표현을 했을까. 문맥상으로는 "be our friends"(우리의 친구들이 되어 주십시요)가 맞지 않을까?

1910년, 이 때의 시대적 배경은 대부분의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이 아직 서방국들의 식민지 지배를 받고 있을 때이다. 이런 사회, 정치적 상황 속에서, 피지배 국가 출신의 성공회 사제가 지배국 교회 대표들에게 "사랑을 달라. 친구를 달라"는 외침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걸까?

"외국 선교사들이 진심으로 현지의 선교 협력자들과 '친구'(a friend)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이것이 선교의 목적이었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저는 과연 그러리라 바라고 믿지만, 그들의 행동(action)에서는 충분히 보여지지 않습니다."

선교사로 이국 땅에 와서 몸이 부서져라 헌신하며, 무지 면하게 해 주고 굶주림 면케 해 준 것 정말 고맙다. 그런데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따뜻한 가슴으로 보여주는 사랑이다. 우리와 친구가 되어주는 그런 선교를 원한다. 그런데 '친구'도 '당신의 선교비로 만들어 줄 수 있는가'라는 도전적인 고발이었다. 정말 가슴 깊은 곳의 슬픔, 외로움, 억눌림, 고통이 함께 배여 있는 절규라 할 수 있다. 선교하는 교회, 선교 받는 교회의 수직적 관계가 아닌 친구와 같은 수평적 관계의 선교 협력을 요구하는 것이고, 눈에 보여지는 선교보다 따뜻한 마음이 전해 지는 협력 선교를 요구한 연설이었다.

필자가 지난 4월 동티모르개혁교회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현지 목회자 훈련 프로그램의 진행을 위한 회의를 하는 중에 동티모르개혁교회 총무 율리아나 목사가 내게 보여줄 것이 있다며 서류함에서 두꺼운 서류 뭉치를 꺼냈다. 동티모르 교회가 협력하고 있는 해외 선교협력 교회들 그리고 선교 동역자들의 명단과, 그 동안 동티모르 교회가 이들과 체결한 선교협정서들이었다.

"우리 교회가 많은 해외 교회들과 선교 협정을 맺고, 많은 이들이 선교 동역자로 이 땅에 와서 일하고 있지만, 솔직히 우리는 이분들이 여기서 어떤 선교 활동을 하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있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다"고 율리아나 목사는 말했다.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오늘날 일치 속의 선교와 전도' 연구문서는 선교가 무엇인지 명료히 설명해 주고 있다. "선교는 통전적인 이해를 동반한다.: 복음의 선포(케리그마, kerygma), 행동(디아코니아, diakonia), 기도와 예배(레이투기아, leiturgia), 매일의 삶 속에서 보여지는 기독교 삶(마티리아, martyria), 우리 서로를 온전케 하며, 화해, 치유로 이끄는 코이노니아(koinonia)"

우리의 선교가 온전하게 이 모두를 담고 있지 못하다면, 개교회주의, 물량주의, 업적주의의 구태를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다면, 이제는 우리의 선교 신학에 대해, 우리의 선교적 태도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과 성찰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제 여러분의 사랑을 요청합니다(We also ask for your love.). 우리에게 친구들을 주십시요! (Give us friends!)"

한국 교회가 이 선교 고발적 외침에서 자유롭다고 과연 자신할 수 있을까?
 

문정은 목사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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