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읽으면 삶이 달라질거예요

시를 읽으면 삶이 달라질거예요

[ 문화 ] 제3회 한국서정시문학상을 수상한 이재훈 시인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7년 11월 13일(월) 18:10
   

"오스트리아의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이반 일리치는 세상을 구원할 세가지로 도서관, 자전거, 그리고 시를 꼽았습니다. 시에서 삶의 지혜, 밑바닥에서 고통과 절망을 이겨낸 이들의 사연, 주변 사람들의 감동적 삶의 이야기, 존재론적인 고민의 과정과 결과들이 있죠. 인간 미래에 대한 비전이 제시되기도 합니다. 교과서에서는 배울 수 없는 다양한 삶이 시에는 있습니다. 시를 쓰고 낭독하는 순간 사람은 가장 순수한 자아가 되죠."

지난 10월 20일 백석대에서 '동화의 세계'외 6편으로 제3회 한국서정시문학상을 수상한 이재훈 시인은 예장 통합 소속의 목회자인 이창희 목사(전 한국교회노인학교연합회 회장)의 장남으로 현재 우리나라 문단을 이끌어가는 가장 주목받는 시인 중 한 명이다.

1998년 현대시에서 등단한 이 시인은 3권의 시집을 냈고, 그 외에도 평론집과 연구서, 시인 인터뷰집 등 우리나라 시문학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시 잡지인 월간 현대시의 주간을 맡고 있으며, 성신여대와 서울과학기술대에서 강의, 시인 후배들과 등단을 앞둔 이들을 위한 클래스를 운영 중에 있다.

이 시인의 시는 단순히 기독교 시라고 재단할 수는 없지만 신앙인으로서 존재론적 고민을 담은 시 속에 자연스럽게 기독교적 세계관이 스며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시는 꽃과 자연을 노래하는 전통 서정과는 다른 40대 중반의 한국사회에서 중년과 가장으로 사는 모습 등이 담긴 도시의 서정을 그리며, 미학적 모더니티의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평생을 목사의 아들로 살았습니다. 학창시절의 기억은 집, 학교, 교회밖에 없을 정도죠. 저는 남들보다 존재에 대한 궁금증이 많았어요. 사춘기도 늦게 왔죠. 결국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반항이 심해져 대학을 몇년간 가지 않았어요. 사회에 나가보니 저의 신앙은 온실 속의 식물이더라구요. 찬 바람만 불어도 넘어질 수밖에 없는. 신앙에 대한 회의와 고민들이 엄청 많았습니다. 그때 찾은 길이 문학이었습니다."

시와 소설, 철학 서적을 탐독했던 그는 가장 근원적인 화두인 신과 나와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며, 신을 믿고 따르는 삶에 대한 고민을 문학적 방식으로 표출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를 쓰기 시작했던 그는 최근 한국서정시문학상 수상소감에서 "하나님께서는 제게 어떤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주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 비밀한 일이 무엇인지 여전히 궁금해 하며 시를 쓴다"며 "그 비밀이 무엇인지 깨치는 날이 오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시를 계속 쓸 수밖에 없는 힘은 깨치는 그날이 언제인지 모른다는 확신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시인은 "서구는 찬가와 송가는 성경 시편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고, 이러한 전통이 오래도록 내재되어 있어 거부감이 없는데 반해 한국시는 찬가와 송가의 전통이 거의 없다"고 분석하고 "우리는 오래된 유교적 질서 속에서 문화가 싹텄기 때문에 문학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쁨으로 하나님과의 만남을 노래하는 것을 용인하기 힘든 문학 토대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하나님의 뜻과 기독교 정신을 모르는 분들도 문학을 통해 느끼고, 궁금하게 하는 촉발의 지점을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기독교 문학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시인의 눈으로 본 한국교회의 모습은 어떠한가'라는 질문에 그는 "한국교회가 조금 더 열려 있으면 좋겠다. 비종교인들에게도 배타적이 아니라 타종교와도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며 "전체 기독교 이미지가 좋아져야 교회 가볼 마음도 생기는 것 아니겠나? 교회가 시민 공동체의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해준다면 이미지가 더 좋아질 것으로 본다"고 답했다. 또한, 그는 일부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정치 편향적인 발언이나 대형교회의 부가 과시되는 듯한 느낌은 일반인들에게 기독교에 대한 좋지 않은 이미지를 만드는 것 같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끝으로 그에게 이 시대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질문했다.

"신자유주의시대에 경쟁밖에 없고, 남을 밟아야 하는 시대 속에서 현대인들은 척박한 마음으로 살아가요. 이렇게 메마른 마음으로 살다가 죽게 되죠. 그러나 시를 읽는 시간, 짧으면 1분, 길면 3분의 시간 동안 우리의 일상과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됩니다. 5분, 10분만이라도 생각하고 성찰하고 감동하고 고민하고, 삶의 이유, 존재의 이유에 대해 잠시나마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되면 삶이 달라질 겁니다."

#하이델베르크

낙인이 찍혀 온 것은 아니다.
비는 내렸지만 땅은 단단하다.
분憤은 모든 일을 억울하게 만들고
억울함은 더러운 말들을 만든다.
더러운 말들을 먹는 나이.
나는 높은 깊은 산골짜기에서 별들의
충만한 꿈을 안으며 아주 천천히 자랐다.
천천히 자란 몸이 허덕거리고 있을 때
오래된 성을 찾아 떠난다.
저 오래된 돌의 분량대로 오래된 시간을 되뇌인다.
성 밑의 마을엔 교회와 학교가 있지만
그곳은 이미 희롱과 진노의 말들만 더펄거리는 곳.
높이 오를수록 숨이 차고 근육이 당긴다.
땅과 멀어질수록 그립고 아득하지만
더 높은 곳이야말로 화답이 존재하는 곳.
이제 혼자만 중얼거리지 않겠다.
매일 새롭게 돋아나서 병이라 여기던 공상도
얘기하며 울고 웃겠다.
이곳은 풍조가 없고 책망이 없다.
당신과 내가 오래되고 깊은 성에 무릎 꿇고
오래오래 기도하면 된다.
가장 넓게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듣고
마른 빵을 오래 씹으며 해거름을 바라보면 된다.
누구와의 문답이 필요할까.
무릎 꿇는 일과 화답하는 일이
저 마을의 시간을 바꿀 수 있을까.
성벽 사이로 가느다란 빛이 스며든다.
전쟁으로 성벽은 무너졌으나
그곳에서 사랑은 늘 시작되었다.
그 사랑은 비석으로 남거나
가장 애통한 이야기로 남았다.
서서히 내장이 말라 가고
종소리만 둥둥 깊고 멀리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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