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전 루터,한국교회를 만나다

500년 전 루터,한국교회를 만나다

[ 교계 ] 교회란 무엇이냐?

최은숙 기자 ches@pckworld.com
2017년 10월 25일(수) 13:20
   

 "사람들은 경건한 마음을 나타내고 사순절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성직자는 재산을 긁어모으고 있다. 이들 성직자에게 고독은 역겨운 것이고 경건함, 복종, 겸손은 오히려 경멸스러운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독일의 종교개혁' 중에서.

중세시대가 막을 내리고 근대로 접어드는 16세기 유럽은 영적으로는 암흑기였다. 세속권력과의 야합, 재물에 대한 탐욕으로 크게 세속화 되어 있었고 성직자들의 영적, 도덕적 부패는 가공할만 했다.

오도된 신학과 교리적 탈선, 불의한 제도와 이교의식 등 교회의 타락과 종교생활의 폐해는 심각했다. 하물며 가톨릭 학자들도 "루터로 인해 교회가 받은 어려움의 책임은 성직자들, 특히 교황청과 그 성직자들에게 있다"고 시인했을 정도다.

16세기 중세교회의 부패는 사람들을 불안케 했고 교회에 대한 불만족과 교황청 및 주교들의 압박에 대한 저항력이 커지면서 1000년 동안 지켜왔던 신앙체계와 교회전통이 의문시되고 거부됐다. "이제 교회는 근본적인 개혁을 해야 한다"는 열망이 점점 커졌고, 맨 앞에서 마틴 루터가 깃발을 높이 들었다.

교인들은 교회가 잘못 가르치고 있는 부분을 알고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 바른 신학을 회복하기를 요청했지만 교회와 사제들의 탐욕과 타락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성직매매와 친족 등용, 성직 겸직, 면죄부 판매는 더욱 성횡했다. 당시 교회는 신자들의 부르짖음에 귀를 막았고, 영적 갈증은 해결해 주지 못했다.

그리고 500년 후인 지금, '한국교회는 그 때와 너무 닮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한국교회의 신뢰도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역사에 만약이란 없다. 그러나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던 역사학자 카(E. H. Carr)의 표현대로, 역사를 배우면서 과거와 만나 현재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할 때다. 그리고 평생 목숨 걸고 교회개혁에 앞장섰던 루터를 다시 만나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종교개혁 당시 중세교회의 부패를 통해 오늘의 한국교회를 돌아보기 위해 마틴 루터를 소환한다.

깊은 한숨 속에 탄식이 섞여져 나오는 듯했다. "도대체 평생을 목숨 걸고 이끌었던 개혁의 결과로 남긴 것이 무엇이냐"며 호통을 치는 듯했다. 2017년 10월 31일.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날, 지금 여기에서 만난 루터는 "한국교회가 교권주의에 빠졌다"고 매섭게 질타했다. 그는 "오늘날 교권주의의 모습이 중세유럽의 교회와 데칼코마니처럼 많이 닮았다"면서 "중세교회 교황처럼 입으로는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면서 사리사욕을 채우고 이를 위해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말씀을 왜곡시키고 있다"고 꼬집었다.

부패한 교회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지위를 일반 신자들과는 다른 특별한 성직이라고 강조하면서 권력을 세력화하고 제도화하며, 부와 명예 그리고 세속적 성공을 추구하며 진리를 왜곡하고 교인들 위에 군림하려는 모습이 교권주의가 아니던가. 역사적으로 보면 외형적으로 교회가 성장하고 부흥할 때 예외없이 교권주의가 기승을 부려왔다.

다소 격양된 듯했지만 루터는 이내 흥분을 가라앉히고 나지막히 물었다. "교회란 무엇이냐?"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물었던 고적적인 질문을 그는 한국교회에 다시 던졌다. 왜일까? 교회는 복음의 전파자요 구원의 전달자, 위로와 안식을 제공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500년 전 교회는 착취의 대상이었다.

루터는 성직에 대한 의식은 점점 약해졌고 교황청의 세금 수납은 점점 더 많은 분노를 유발시켰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에 따르면 교황청은 심사숙고해서 고안해 낸 요금제도, 세금, 많든 적든 자유로운 기부금, 그리고 면죄부로 비어있는 교회 금고를 채우고자 심혈을 기울였다.

로마교황청은 새로 확정된 감독 혹은 수도원장에게서 소위 초년도 성직 상납금을 징수했는데 이것은 새로 받은 성직록 중에서 첫 1년 수입의 절반을 교황청에 내어놓는 수준이었다. 로마 교황청에는 은전과 성직록을 관장하는 한 부서가 있었는데 이곳은 교황의 사면, 은총의 서신, 특별법 그리고 특혜를 승인하고 판매하기 위해 설치된 곳이다. 더 나아가서 참회부와 면죄부도 교황의 금고를 채워주었다.

"악습은 너무 자명한 것이 되어서 거기에 빠진 사람은 죄의 악취를 계속 인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신도들은 이미 한계에 치닫고 있었다"고 루터는 말했다. 그는 "내가 1517년 면죄부 판매를 비판하는 95개조 반박문을 내건 일은 사실 아주 작은 사건으로 끝날 수 있었지만 종교개혁의 불씨를 지폈던 이유가 되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반박문에 대한 이슈가 학자와 학생들 사이에 점점 크게 회자되었던 이유는 교회의 교리적 탈선에 대해 이미 16세기의 사람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루터의 분노는 조금도 멈추지 않았다. "교황청이 무더기로 면죄부를 발행하는 것은 말 그대로 지도자의 오만이다. 나는 구원 받기 위해 반드시 교황을 인정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오직 성경만이 신앙의 도리와 생활의 규범이 되므로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교회를 개혁해야 한다. 연옥교리는 잘못이며 교회의 전통은 인간에게서 비롯된 것이므로 잘못될 수 있다. 면죄부와 고해성사는 성경의 교훈에 배치되는 것이다."

실제로 하나님의 구원을 절실히 원했던 가난하고 힘없는 민중들의 돈으로 얻어진 면죄부 판매 수익금은 어떻게 사용되었나? 알브레히트가 권력의 핵심인 마인츠 대주교 직책을 얻기 위해 푸거 가문에서 빌린 막대한 빚을 갚는 데 절반이, 교황이 사치스러운 생활로 탕진한 베드로성당 건축비로 사용됐다.

당시 왕들과 귀족들, 그리고 대주교 등 교회지도자들이 지배계급으로 권력과 부를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농민과 노동자들은 매우 빈곤한 상태였다. 특히 유럽 토지의 3분의 1은 교회의 소유이거나 교회의 통제 아래 있었는데, 농민들은 자신들의 생산물 중 70~80%를 지대와 세금 헌금 등으로 바쳐야 했으므로 농민들의 생활상은 비참할 지경이었다. 오죽하면 성직자들을 영혼을 낚는 어부 대신, 영지를 낚는 어부로 전락했다고 언급했을까.

루터는 "부패는 개혁을 부른다. 500년 전 종교개혁은 더 이상 썩은내 진동하는 교회를 벗어나기 위한 도전"이라면서 지금 한국의 대형교회가 중세와 같다고 말했다. 목회자의 권력의 사유화로 공교회성을 상실했다는 말이다. 그는 중세 교황들이 성직을 매매하고 면죄부를 판매하며 거둬들인 돈으로 사치를 일삼고 교회질서를 문란하게 한 것과 지금 목회자들이 교회재정을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이 무엇이 다르냐고 반문했다.

"자녀 교육비, 아내 병원비와 하물며 반려견 사료비까지 교회재정으로 사용된다니 …. 교회의 헌금이 자기 쌈짓돈이라도 되는 것인가. 헌금으로 주식거래를 하고 세금포탈, 금권선거, 과도한 사례비와 퇴직금까지. 500년 전에도 물욕 때문에 종교개혁이 촉발됐는데 한국교회는 여전히 그 유혹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냐"며 꾸짖었다. "하나님 잘 믿으면 축복받고 성공한다는 설교로 십일조와 각종 불분명한 헌금을 강요하는 것이 현대판 면죄부가 아니냐"고 호통을 쳤다.

그는 특히 한국교회의 교회 사유화에 대해서도 크게 걱정했다. "중세시대 가장 심각한 성직제도의 타락 원인은 바로 성직자들이 자녀들에게 교회 재산을 넘겨주는 일이었다"고 말한 그는 "한국의 일부 대형교회들의 행태가 참 우려된다. 성직매매, 왕권위임, 죄용서권, 축복의 남발 등으로 극도로 타락한 중세교회와 한국교회는 참 많은 점이 닮았다"고 탄식했다. 루터는 "교회의 사유화, 공교회 상실에 따른 교회의 세속화가 바로 한국교회의 부끄러운 민낯"이라고 꼬집었다.

뿐만 아니라 루터는 목회자들의 윤리에 대해서도 한국교회를 점점 수렁에 빠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루터는 "성직자들은 영적 계도력을 상실하고 성직자의 수는 많았으나 성직자의 질적 수준은 한없이 낮았던 중세교회와 다를 것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세후기 결혼한 사제들은 '속죄비'를 상납하거나 자녀가 태어나면 '면죄세'를 내면 용서받았다. 추기경들은 세속 군주들처럼 사치, 사냥, 도박, 오락을 즐겨했고 여성과 함께 노는 일에 몰두했다.

루터는 급하게 한국교회의 개혁을 재촉했다. "사회는 교회가 세상과 다르기를, 사람들은 성직자와 교인이 비신자들과 다르기를 기대한다. 돈과 권력과 명예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본주의, 물량주의, 상업주의에 물들어 있는 교회가 아니다. 목회자의 권위주의와 교권주의, 물질주의와 기복신앙으로 얼룩진 교회가 아니다. 오직 믿음, 오직 은총, 오직 성서로 돌아가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 안에서 충실할 때 누구보다도 거룩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며, 율법의 완성인 이웃사랑을 실천할 때 교회 존재의 이유가 있다. 교회는 교회다워야 하고, 목회자는 목회자다워야 하는 것 아닌가. 이제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향해 일어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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