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을 향한 갈망

거룩을 향한 갈망

[ 논설위원 칼럼 ]

최흥진 총장
2017년 10월 10일(화) 13:53

현재 우리 사회는 기독교 기관과 단체, 그리고 교회와 교인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지만 여전히 사회적인 병폐와 비리들이 줄어들지는 않고 있다. 기독교 문화와 분위기에는 익숙해졌어도 정작 복음의 능력은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 경건의 모양은 더 화려해졌으나 경건의 힘이 미약한 것이 또한 우리의 현실이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는 2년에 걸쳐 '거룩'과 관련한 주제를 선정하였다. '다시 거룩한 교회로', '거룩한 교회 다시 세상 속으로'. 교회의 거룩성을 그 출발점으로 하여 세상 속에서의 거룩의 능력을 발휘하는 참된 교회의 모습을 회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극도로 심화되어가는 한국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혁과 변화의 원동력으로서의 거룩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며 참으로 이러한 결정은 시기적으로 적절한 강조라고 생각한다.

이 때 생각나는 한 인물이 있다.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이다. 18세기 미국 사회에 만연한 계몽주의와 실용주의의 변화 앞에서 마치 세속 세계에서의 수도사처럼 인생을 살았던 한 사람이다. 그는 청교도적인 분위기의 집안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변화와 발전의 한 시대를 살면서 예일대학교에서 수학을 하며 최고의 지적인 능력을 발휘하기도 했던 신학자였지만, 무엇보다도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거룩을 향한 갈망을 우선시하여 엄격한 구도자로서의 일생을 살았다.

특히 에드워즈 목사의 일기와 결심문들을 살펴보면 그는 우리의 시각에서 극단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 식사와 잠을 최소화하면서까지 영적인 훈련과 구도의 길을 걸어갔던 것을 알 수 있다. 어쩌면 3대에 걸친 청교도 목회자로서의 삶이 그를 지치게 할 수도 있었겠지만, 오히려 그는 더 강화된 경건의 훈련으로 자신을 끊임없이 단련했고, 그의 이러한 결단과 헌신은 미국의 영적인 대각성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 

더욱이 하나님의 거룩은 에드워즈에게 항상 그의 모든 속성들 중 가장 우선적인 것으로 나타났는데, 뛰어난 신학자이기도 했던 그에게 있어 영적인 만족과 기쁨은 철저히 교리나 신학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는 막연한 감정적인 카타르시스나 근거없는 이상에 이끌린 신비주의자가 아닌 성서와 신학에 입각한 칼뱅주의적인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값없는 구원의 은혜, 그리고 성령의 역동성에 대한 통합적인 신학을 지향했던 인물이었다.

비록 그의 탁월한 학문적인 능력은 프린스턴 대학교의 학장으로 취임하던 같은 해에 천연두를 앓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어 아쉽게도 당대에 결실을 맺지는 못했지만 후대에 신학뿐만 아니라 미국 철학과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별히 그의 평생에 걸친 거룩한 갈망을 향한 경건의 훈련은 오늘날 영적인 능력을 회복해야 하는 절박한 과제 앞에 놓인 한국 교회와 사회에 그 무엇보다도 강력한 도전을 주고 있다고 본다.

어느덧 교회가 개혁의 주체가 아닌 개혁의 대상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현 시대에, 다시금 겸허하게 조용한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와 말씀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경건의 훈련부터 다시 시작할 때 우리 교회는 다시 한 번 한국 사회에 희망을 주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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