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지동 혜창/저널리즘의 예술화

연지동 혜창/저널리즘의 예술화

[ 연지동혜창 ]

안홍철 목사
2017년 06월 21일(수) 10:52

일제강점기부터 광복과 6ㆍ25를 거치는 30여 년간의 근ㆍ현대사 격동기를 한 청년 지식인의 삶을 통해 조망하고 있는 소설 '불꽃'의 작가 선우휘씨는 조선일보 편집국장 출신입니다.

한국 최초의 자연주의적 소설 '표본실의 청개구리'의 작가 염상섭씨도 동아일보 기자로 입사,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지낸 언론인 출신 소설가입니다. 두 분은 모두 별세하셨지만 한국문학사에서 언론인과 작가를 병행한 시금석이 됐습니다.

소설가 김훈 씨는 한국일보에 입사한 이후 시사저널, 국민일보, 한겨레신문 등에서 30여 년 기자생활을 했습니다. 한국일보 사장을 역임한 장명수 씨와 함께 기획한 '문학기행'은 당대 최고의 기획이었습니다.

불혹을 훨씬 넘긴 나이에 등단, 2001년 '칼의 노래'로 동인문학상, 2004년 '화장'으로 이상문학상, 2005년 '언니의 폐경'으로 황순원 문학상, 2007년 '남한산성'으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하며 이 시대 대표적인 소설가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기자 출신 작가들이 늘고 두각을 보이는 이유는 기자라는 직업적 훈련과정에서 몸에 밴 감수성이 소설로 탄생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들은 대중지향적 글쓰기를 체화한 상태에서 소설을 쓰기 때문에 일반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쉽고 친근하게 다가간다는 것이죠. 게다가 다양한 취재 경험은 작가로서 든든한 밑천이 될테니까요.

1939년에 발표된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의 작가 존 스타인벡도 소설가이자 기자였습니다. 그는 이 소설로 1940년 퓰리처상 '소설' 부문(후에 '픽션'으로 변경)을 수상합니다. 19세기 영미 사실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찰스 디킨스와 마크 트웨인도 원래 기자였습니다.

이후에도 조지 오웰로 그 전통이 이어졌고,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존 스타인벡에 와서 만개했습니다. 그들은 르포르타주 기사의 작법을 가미한 사실주의 소설, 예컨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스페인 내전을 취재하여 기사를 송고한 뒤, 후에 이를 바탕으로 1940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발표합니다.

1970년대 들어서면서 영미 쪽에서 언론의 위기가 닥쳤을 때 언론의 미래를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 찾자는 '뉴 저널리즘'운동이 시작됐습니다. 뉴 저널리즘은 '문학 저널리즘' 즉 찰스 디킨스, 마크 트웨인, 어니스트 헤밍웨이, 존 스타인벡의 정신을 되살리자는 기치였습니다. 단지 기사와 소설을 구분하지 말고 문학적 구성을 차용하는 기사 또는 사실만 담은 르포 문학을 구현하자고 주창했습니다.

언론학자 마샬 매클루언은 "새로운 매체의 등장은 기존 매체를 소멸시키지 않고 오히려 예술화의 길을 가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예술화 그것은 곧 '장인정신'입니다.

디지털 시대에 속보 경쟁은 어떤 면에서 무의미합니다. 속도보다 심층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합니다. 또한 정보 전달만으로도 임무가 끝난 것이 아니라 정보를 체계화하는 '지식 저널리즘'으로 향하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예술화의 길을 가는 방편으로 저널리즘이 문학과 컬래버레이션을 이뤄야 하고, 아카데미즘과도 결합하는 시도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디지털 혁명으로 불리우는 종이신문의 위기시대, 현장을 생생하게 감동적으로 쓰는 문학적이고 아카데믹한 기법으로 보석처럼 빛나는 글을 쓰는 신문기자들이 많아지길 기대합니다.

안홍철   상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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