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논설위원 칼럼 ]

조재호 목사
2017년 05월 25일(목) 09:51

푸른 5월에는 산천이 녹음을 더해 간다. 푸르고 싱그러운 계절의 빛깔 때문인지 5월이 가정의 달인 것은 아귀가 맞다고 느껴진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푸르게 삶의 자리에 그늘을 만들어 지켜주었고, 또 지켜주어야 할 소중한 사람들을 생각하는 날들이 우리의 5월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5월에는 감사하고 더 많이 감사하는 달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전 어느 시대보다도 풍족하게 살지만, 고마움과 감사함의 마음은 그리 넉넉지 않다. 더욱이 감사와 고마움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도 이제는 더 어렵고 복잡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 스승의 날은 '김영란법'이 시행되고 처음이다. '부정청탁'을 금지하는 좋은 목적을 가진 법이다. 그러나 예수님 시대에 유대인의 율법처럼 수많은 조항들로 살을 불리고 나자 '부정청탁 금지'라는 명목아래서 학생들이 선생님들 가슴에 카네이션 꽃도 못 달아드리게 되었다.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것도 이제는 여간 어렵게 되고 말았다.

지금은 우리네 일상에서 없어졌지만, 5월은 보릿고개를 힘겹게 넘었던 계절이다. 가난한 농사꾼의 집에서는 가을 추수 때 걷은 곡식으로 소작료다. 빚이다, 이자에 세금을 떼고 나면 한 해 겨우살이로 만족해야 했다. 이제 초여름 보리수확 때까지는 거칠고 근기 없는 것으로 주린 배를 채우며 살아야 했다. 그 시대에 국민의 대부분은 가난한 농사꾼이거나, 또는 그 농사꾼을 아비로 두었으니, 그야말로 보릿고개는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연중행사와도 같았다.

그러던 시절에 충청도 어느 가난한 집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 집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5살짜리 어린 손자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손님이 오셨다. 할아버지를 찾아온 손님이셨다. 저녁 때가 가까운데 손님은 가실 기미가 아직 없자 속이 타는 것은 며느리이다. 저녁 밥을 지어 드려야 하는데, 쌀독은 바닥을 보인지가 오래다.

며느리는 어쩔 수 없이 옆집으로 달려가 쌀 한줌을 꿔와서 밥을 지었다. 오랜만에 부엌에서 나는 밥 냄새를 맡고 5살짜리 아이가 배고프다고 엄마에게 보챈다. 엄마는 "손님이 밥을 드시고 남으면 주겠다"고 약속을 하고 달랬다. 그러자 아이는 툇마루에 앉아 문틈으로 들여다보며 손님이 밥 남기기만을 기다렸다. 많지도 않은 밥을 할아버지와 손님은 깨끗하게 비웠다. 기다렸던 아이는 그만 엉엉 울기 시작했다. 안타까운 할머니는 우는 아이를 등에 업고서 집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내일 아침에 할미가 우리 손주 맛있는 밥 줄게"하며 달랬다.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할머니는 손자 녀석을 등에 업고서 동네에서 먹고 살만한 집을 찾아갔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손에 빗자루를 들고 그 집 마당을 쓸었다. 눈치 빠르고 인심 좋은 안주인은 빈 그릇을 가져다 자기 집 식구들 그릇에서 한 술씩 덜어 밥 한 그릇을 만들어 건넸다. 할머니는 그것을 얻어서 어제 저녁 약속했던 자기 손자에게 밥을 먹일 수 있었다. 배고픈 어린 녀석은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모른다. 이를 지켜보는 할머니 눈에는 눈물이 맺힌다. 이것이 가난한 시대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넘어가야 했던 보릿고개의 모습이다.

이런 애달픈 보릿고개를 더 이상 자녀세대들에게는 대물리지 않기 위해,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 세대는 몸을 아끼지 않고 일했다. 허리가 휘고 손에 지문이 사라지도록 일을 했다.

덕분에 우리는 5월을 춘궁기나 보릿고개로 기억하지 않는다. 5월을 녹음이 짙어지고 꽃이 만개하는 '계절의 여왕'이나 '가정의 달'로 오롯이 우리가 맞이할 수 있게 된 것은 부모세대의 헌신을 통해서다. 그러기에 5월에는 더욱 감사할 수밖에 없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매년 5월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귀한 선물은 감사의 회복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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