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500주년, 다시 선교를 생각하다

종교개혁 500주년, 다시 선교를 생각하다

[ 논설위원 칼럼 ]

오대식 목사
2017년 03월 28일(화) 15:37

종교개혁으로 유럽에서 개신교가 점차 커가고 있을 때, 당시 로마 가톨릭은 개신교에 대하여 계속해서 많은 비난과 흑색선전을 하였다. 그 비난 중 하나는 개신교회는 선교에 관심을 갖고 있지도, 열심을 내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당시 로베르토 벨라르미노(1542~1621) 추기경은 "개신교도들은 자신들을 사도나 전도자들과 비교하지만 수많은 이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개종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힐난하였다.

그러나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당시 개신교는 정말 선교를 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16, 17세기 개신교는 가톨릭의 박해로 인해 생존하는 것 자체가 가장 큰 관심사였고, 아시아, 아프리카, 신대륙 등 선교지로 가는 모든 길은 스페인과 포르투갈 같은 가톨릭 국가들이 독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신교는 그동안 복음의 전도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었던 수도원 조직이 전무하였다. 결국 당시로서는 가톨릭교회가 하던 형태로 선교를 하기에는 힘이 턱없이 부족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더욱 교회 안의 직제나 잘못된 교리, 예배의식 등을 바로 잡는 교회의 개혁에 몰두하였고, 평신도가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온 힘을 기울였으며, 누구나 하나님께 스스로 나갈 수 있는 만인제사장설을 가르치며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른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는 데에 온 힘을 집중시켰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바로 그런 노력이 시간이 지나면서 개신교회의 엄청난 선교의 기초를 다질 수 있게 만든 것이었다. 신자 개개인이 삶으로 전하는 선교가 시작되었고, 결국 복음은 엄청난 속도로 퍼져나가게 되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청교도들의 신대륙 이주도 스스로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려고 했던 노력의 결과였다. 이렇듯 개신교회의 선교의 시작은 개개인이 성경을 읽는 것, 그 말씀대로 사는 것, 그래서 삶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이웃에게 보여 주었던 것이다. 영국의 롤라드 형제들과 보헤미아의 모라비안 형제들의 활동은 그런 개신교의 선교정신을 잘 증명해 준다.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이지만 한국의 개신교회의 상황은 그렇게 녹록치가 못하다. 어떤 사람은 '교회가 선교를 막는 시대'라고 말을 하는데 그 표현을 부정하기가 어렵다. 담임목사 자리의 세습, 불투명한 재정운영, 비민주적 의사결정, 목회자의 윤리문제 등 교회답지 못한 일들이 교회 안팎에서 행해지고 있는 이때에 교회는 어떻게 선교를 할 수 있을까? 개신교는 개신교회가 시작된 종교개혁의 역사에서 그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조폭들이 가끔 대 사회적으로 봉사를 하는 경우가 있다. 성탄절에 고아원을 찾아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등 조폭의 선행이 심심치 않게 뉴스에 나온다. 그러나 조폭의 그런 봉사는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 조폭의 가장 좋은 봉사는 조폭이 이 사회에서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선교를 막는 시대에 가장 좋은 선교는 교회를 교회답게 바로 세우는 것이다. 그것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교회의 선교는 계속 허공을 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대식 목사
높은뜻정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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