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 예수를 만나는 상상력

재림 예수를 만나는 상상력

[ 논설위원 칼럼 ]

오시영 장로
2017년 03월 14일(화) 17:01

하나님이 인간에게 베푼 축복 중 하나가 '상상력'이다.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은 믿음도 굳건하다. 이성만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천지창조와 예수의 부활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상상력이 잘못되면 걷잡을 수없는 문제를 유발하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상상력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상상력이 고갈되면 인생살이가 마른 고목처럼 되기 쉽다.

필자는 십자가에 달려 고통 받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을 종종 상상한다. 어려운 일로 힘이 들거나 세상유혹이 몰려 올 때 십자가 위의 예수님과 종종 대화한다. "예수님, 제가 많이 힘들어요"하면 예수님께서도 "그래, 네가 많이 힘든 모양이구나, 나도 많이 힘들다"고 답하신다. 그러시고선 "그래도 참아라, 나보다는 그래도 네가 덜 하지 않겠니?"하신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필자는 "예"하고 눈물 한 방울 떨어뜨리고 순종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마음을 다잡고 힘들지만 옳은 길을 가려고 기도하게 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10일 헌법재판소에 의해 탄핵 되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5ㆍ16쿠데타 집권 이후 56년이 흐른 뒤 그의 딸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현대사의 한 획이 종결되었다. 최순실 게이트로 빚어진 국정농단사태가 헌재에 의해 합법적, 민주적으로 마무리되었음은 국가 전체적으로 볼 때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부녀 대통령이 총탄과 탄핵이라는 비극적 방법으로 결말을 맞이함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옳음의 삶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현대사회는 경제사회라고들 한다. 그러다보니 먹고 사는 문제가 최대의 이슈가 되어버렸다. 경제학은 이로운가 또는 불리한가의 학문이다. 반면에 법학은 옳고 그름의 학문이라 할 수 있다. 경제가 이윤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과정에서 옳고 그름의 한계를 벗어날 때 법학의 냉정함이 옳고 그름의 심판자 기능을 담당하게 된다. 법치주의가 살아 있으면 그래서 세상이 그만큼 정의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경제학과 법학 위에 신학이 있다. 신학은 하늘의 이치에 근거하여 보다 한 차원 높은 옳고 그름을 도덕적, 신적 경지로 끌어올리기 때문에 우리로 하여금 보다 더 높은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라고 요구한다.

이번 탄핵 정국을 둘러싸고, 과연 우리 기독교가 신학적 가치에 비추어 하나님의 공의 실천에 기여하였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기독교 지도자들이 '옳은 길'을 위해 예수님의 가르침을 얼마나 실천하였는지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하리라 본다. 특히 안창호 헌법재판관이 보충의견을 통해 밝힌 "탄핵심판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적 문제가 아닌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고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문제"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크다.

예수님은 본질적으로 진보주의자였다.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 보다 높은 차원의 삶의 가치를 가르치시며 로마의 기득권 세력에 저항하라고 가르치셨다. 그랬기에 십자가 죄명이 반역죄였던 것이다. 우리는 범죄적 사실들이 객관적 증거들에 의해 수없이 드러났음에도 이를 외면한 채 보수의 감옥에 갇혀 옳고 그름의 문제를 의도적으로 외면하거나 왜곡한 적은 없는지 반성하여야 한다.

젊은이들이 교회를 외면하고 있다고 한탄한다. 깊은 원인 중의 하나를 들라면 기독교 지도자들의 편협된 보수적 가치가 옳고 그름의 문제를 외면하고 기득권에 안주하려 하는 모습이 젊은이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선배들의 삶의 모습에서 배울 것이 있다고 인정할 때 젊은이들이 몰려들게 되어 있다. 믿는 이들이 젊은이들에게 하늘나라를 상상케 해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가 보수와 진보의 낡은 울타리에서 벗어나 상상력을 키워야 한다. 사순절, 재림 예수를 만나는 상상을 해야 한다.  

오시영 장로
상도중앙교회
숭실대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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