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픔'을 품는 교회

'5픔'을 품는 교회

[ 논설위원 칼럼 ]

박근호 목사
2017년 02월 24일(금) 11:14

입춘과 함께 시작된 정유년 '붉은 닭의 해'는 우리에게 '암탉이 되신 하나님'을 생각나게 한다. 태초에 신으로 수면 위에 운행하신 하나님은 암탉이 알을 품어 병아리를 부화시키듯 세상을 품어 낳으신 부모의 사랑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평화를 상실한 평화의 도시 예루살렘을 내려다보시며 "내가 암탉이 병아리를 품음같이 너를 품으려 한 적이 몇 번이더냐"라고 안타까워하시며 "네가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평화가 네 눈에 숨기웠다"고 눈물을 흘리시던 '암탉이 되신 주님'을 떠오르게 한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가리켜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다. 그 표현이 지닌 여러 함의(含意)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의미는 바로 '품는다(抱擁)'는 것이다. 몸만이 품이 되어 품을 수 있다. 여러 지체를 가진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만이 발로 다가가서 가슴과 팔을 벌려 포옹(Hug)하고 손으로 등을 쓰다듬고 두드려줄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암탉이 되신 성부와 성자가 성령 안에서 우리를 향한 기대일 것이다.

주님은 당신의 몸을 이루는 지체로 부름받은 당신의 사람들이 그렇게 당신이 본보이신 사랑으로 서로 몸을 이루고 더 나아가 세상을 품음으로 치유와 회복과 갱신과 화평과 구원의 역사를 감당해 나가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교회는 무엇보다 어둠과 밝음, 공허와 충만, 혼돈과 질서가 겨루는 이 세상을 힘겹게 살아가는 모든 피조물들의 '5픔을 품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 '5픔'이란 바로 슬픔과 아픔과 (배)고픔과 (고/애)달픔과 (서)글픔이다. 인생을 짓누르는 무거운 짐들은 시대와 환경을 초월하여 여전하기에 그 삶의 무게를 가볍게 하고 그 짐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주님의 몸된 교회의 사명일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현실의 '5픔'이 무엇인지 그 원인을 찾아 해결해 가는 '소명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큰 범죄는 '사람에게서 희망을 빼앗는 것'이라고 한다. 삶이 힘겨워도 마음의 등뼈인 희망을 잃지 않는 한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한 해는 우리에게 희망보다 절망, 기대보다 좌절을 안겨다주었다.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체육 등 '국정농단으로 인한 총체적 위기'를 경험하고 있고 그런 와중에 경제는 휘청이고 청년 중년 노년 할 것 없이 세대마다 걱정과 염려가 곁들여진 삶의 무게을 느끼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희망을 읽어가는 자들의 품이 되어 저들을 품어주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도와주고 함께 가는 '희망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작금의 교회는 '암탉이 되신 성삼위 하나님의 몸으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하질 못하고 있는 듯하다. '기도하는 집'을 '도둑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분노하시던 주님의 모습이 여전히 오버랩되는 오늘의 현실이다. 치유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치유의 대상이 되어있는 건 아닌지 두렵기도 하다. 몸을 이루어 품기보다 분열되고 반목하는 공동체는 아닌지, 자기를 비우기보다 채우려는 이기적인 자신은 아닌지 스스로를 깊이 성찰할 때이다.

'다시 거룩한 교회로'의 길은 주님을 향한 거룩한 경청과 자신을 향한 거룩한 성찰과 세상을 향한 거룩한 일상이 조화를 이룰 때 우리는 '5픔을 품는 교회'가 되어 암탉이 되신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될 것이고 허물어지는 교회가 아니라 든든히 세워져 가는 교회가 될 것이다.

박근호 목사
구미영락교회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