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이기는 사랑

두려움을 이기는 사랑

[ 논설위원 칼럼 ]

강정식 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6년 07월 06일(수) 10:58

"낯선 사람은 위험하다!"
영국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은 자신의 저서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에서 현대 도시생활이 야기하는 불확실성과 그에 따른 공포감을 지적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끊임없이 낯선 사람들을 마주쳐야 하고 그들이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사실은 엄청날 정도의 지속적인 불확실성을 야기하기 때문에, 도시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만성적인 긴장감과 공포심에 사로잡혀 살아간다는 것이다.

연일 대중매체에서 쏟아내는 각종 사건 사고 소식들도 이 사회가 '위험 사회'라는 인식을 강화시키는 데 한 몫 한다. 이에 대한 현대인들의 반응은 대체로 낯선 자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자신의 영역으로부터 쫓아냄으로써 불확실성이 안겨다주는 불안감이라는 '유령'을 떨쳐내는 것이다.

이렇게 보자면 우리는 낯선 자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그들과 함께 공존하는 법을 익히기보다는 배제와 축출이라는 손쉬운 방식을 택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낯선 자들을 환대하며 그들과 더불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사도 요한은 자신의 첫 번째 편지에서 온전한 사랑의 대척점에 '미움'이나 '적개심' '질투' 등이 아니라 '두려움'이라는 태도를 배치한다(요한 서 4:18). 요한에 따르면 사랑의 반대는 다름 아닌 두려움이며,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갖지 않는 태도이다.

일견 요한의 대조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실제로 낯선 자들을 사랑으로 환대하지 못하고 외려 우리 삶에서 배제하고 축출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그 근저(根底)에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낯선 자들에 대한 두려움은 바우만의 지적처럼 불확실성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자신의 연약함이 노출되는 상황에 대한 거리낌, 타인의 평가와 시선이 야기하는 불안감, 갖가지 '차이들'로 인한 긴장감 등이 뒤얽힌 복합적인 상황에 기인한다. 이에 따라 많은 현대인들이 낯선 자들을 위험하다고 단정 짓고 두려움을 은닉한 채 자기만의 세계에서 내밀한 외로움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요한은 "우리는 사랑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선언한다(요한 1서 4:19). 현대인들은 내밀한 외로움과 은밀한 두려움에 사로잡힌 나머지 낯선 타인을 사랑하고 환대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나그네를 영접하고 낯선 자들을 두려움 없이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다(히 13:1~2).

요한은 그 이유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이 말은 그분의 사랑과 사랑의 방식을 이해하면 그것이 타인을 사랑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그 누구보다 낯선 '타자'시지만, 우리의 연약함을 품으실 뿐 아니라 외모로 우리를 평가하시도 않으시고 다양한 차이를 넘어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낯선 타인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고 붙잡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를 깊이 깨닫고 그 사랑을 우리가 맺는 관계의 준거(準據)로 삼을 때, 바로 그 사랑이 '두려움'을 밖으로 내어던져 버릴 것이다. 노회한 한 사회학자의 진단처럼 낯선 자들은 위험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로 인한 두려움을 내어 쫓고 신뢰와 존중의 공동체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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