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빙

청빙

[ 논설위원 칼럼 ]

정명철 목사
2016년 06월 21일(화) 16:39

부교역자들이 교단 신문을 볼 때 가장 관심과 인기있는 것이 담임목사 청빙광고라고 한다. 담임목사 청빙광고를 보면 거의 비슷한 내용이다. 학력과 이력, 목회계획서 그리고 설교 테잎을 요구한다. 사모소개서를 요구하는 교회도 많이 있다.

한 교회의 담임교역자가 누구냐에 따라 그 교회 전체가 행복해지기도 하고 불행해지기도 한다. 담임목사는 모든 교인들의 영적인 책임을 지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기에 어떤 영적인 능력과 훈련을 받아왔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데 회사에서 직원을 뽑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을 보게 된다.

근래에 이루어지는 담임목사 청빙에 성공하려면 첫째 스펙에서 밀리면 안 된다. 남들보다 좋은 학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학벌을 보고 제자들을 뽑지 않으셨는데 오늘의 교회는 학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둘째, 인물이 잘나야 한다. 키가 너무 작아도 안 된다. 그래서 키가 작은 목사님은 키 높이 구두를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우리교회의 한 부목사님은 대머리가 심하여 앞으로 목회자 청빙에 불이익을 받을까 염려가 되어 머리카락 이식 수술을 해준 적도 있다.

셋째, 설교를 잘해야 한다. 설교 테잎으로 보내는 단 한편의 설교를 듣고 판단하기 때문에 한편의 설교에 명설교가를 흉내 내어서라도 잘 녹음해야 한다.

넷째, 이력서를 잘 써야 한다. 자기소개 및 목회계획을 잘 써야 한다. 그래서 잘 쓰여진 목회계획 샘플을 입수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섯째,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누구의 줄을 잡았느냐이다. 좀 다른 것이 부족해도 줄이 튼튼하면 될 수 있다. 이와 같은 내용들은 일반회사의 사원모집과 다를 바가 없다. 예수님이라도 이력서를 내기도 어려울 것이다.

참 서글픈 이야기이다. 목회자 청빙을 위해 청빙위원회가 구성이 되고 도착한 수십 편의 서류를 읽고 설교 테잎을 듣는다고 한다. 단 한편의 설교를 정말 잘할 수 있다면 그것은 사기일 수 있다.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도 단 한편의 설교 정도는 외워서 멋들어지게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몇몇 교회에서 담임목사 청빙과정에 조언을 듣기 위해 찾아온 분들에게 반드시 하는 말이 있다.

"당신들과 자녀들의 영혼을 맡길만한 목사님인지 하나님의 뜻을 먼저 물으십시오." 이력서와 설교 한 두 편을 듣고 판단하지 말라는 뜻이다. 어떤 분이 '담임목사가 교체되는 것은 심장수술과 같다'라고 했는데 공감이 가는 표현이다. 그만큼 철저해야 하고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청빙'(請聘)이란 '청할 청(請)'에 '찾아갈 빙(聘)'자를 쓴다. 우리교회에 합당한 분을 찾아간다는 뜻이다.

담임목사 청빙이 진정한 청빙이 되기 위해서는 온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일을 맡은자들은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자세로 목회자를 찾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목회자를 세우실 때에도 훈련을 시키신다.

모세를 80년동안 훈련시키셔서 이스라엘 해방의 지도자로 삼으셨다. 다윗이 왕이 되기 위해 수많은 방랑생활과 고통을 견뎌내고 강한 사람으로 훈련이 되게 하셨다. 요셉을 그저 꿈 해몽 한번 잘했다고 이집트의 총리로 세우신 것이 아니라 노예생활을 거치며 왕의 감옥에서 수많은 스승들을 통해 무려 13년을 훈련시키셨다.

영적 리더쉽은 자리가 주어졌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목회자도 오랜 훈련의 과정을 통해 세워진다. 이러한 훈련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목회자를 청빙했을 때 설교는 잘할 수 있을지 몰라도 공격적인 성향으로 당회와 충돌이 일어나기도 하고 세속적인 방법으로 교회를 운영하려고 하기도 한다. 그룹을 나누어 교회에 분열을 야기시키기도 한다.

교회에 문제가 일어난 다음에 목회자 탓을 하는 것은 사실은 어리석은 일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이전에 이력과 외모를 보고 청빙하였던 것에 대해 교회공동체가 함께 회개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목회자는 설교가 이면서 상담가이기도 하고 병사들 앞에서 숙달된 시범을 보이는 조교이기도 하고 병든 사람을 고치는 의사이기도 하고 슬플 때 대신 울어주는 곡비(哭婢) 이기도 하고 고장난 기계를 고쳐 움직이게 하는 기술자이기도 하다.

이것은 현장에서 많은 눈물을 흘려 보아야만이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목회자들을 훈련시키시고 계신다. '나는 이곳을 평생지키겠습니다'라는 것도 교만이다. 내가 이 정도 자리는 충분히 할 자격이 있다는 교만이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다고 깨달음이 오면 늘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목회자는 늘 세가지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한다고 했다. 설교 준비, 떠날 준비, 죽을 준비이다. 때로는 대형교회에서 나의 사명이 다하였다고 생각되면 주저없이 선교사로, 아픔을 겪는 교회로 새로운 소명을 따라 떠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목사이다. 어느 날 시골교회에서 대형교회 목사님을 청빙했다는 그런 풋풋한 소식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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