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가 죽어야 교회가 산다

목사가 죽어야 교회가 산다

[ 논설위원 칼럼 ]

서정오 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6년 06월 16일(목) 10:07

'목사가 죽어야 교회가 산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회자되는 때다. 틀린 말은 아니다. '오직 희생을 통해서만 주님의 몸 된 교회는 바로 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들의 교회 형편과 문제의 원인을 온통 목사에게만 짐 지우기에는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은 훨씬 심각하다. 솔직히 정말 목사만 죽어 주님의 교회가 살 수만 있다면, 기꺼이 죽어도 좋다는 목사들이 결코 적지 않다고 믿는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데에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의 심각성이 있다.

사실 한 교회를 무너뜨릴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무엇인가? 목사 한 사람만 무너뜨리면 얼마나 쉽게 무너지고, 그 상처에서 치유되고 교회가 교회다워지려면 얼마나 오랜 세월이 흘러야만 하는가? 그런 점에서 사탄은 어떻게 하든지 목사들을 공격하고 유혹하고 허물어뜨리려 온갖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다. 필자는 요즘 이런 말을 하고 싶다. '목사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

'목사가 교회를 위해 존재하는가? 교회가 목사를 위해 존재하는가?' 두 말 할 것도 없이 '목사가 교회를 위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우리 형편은 사실 여부가 어떠하든, 교회가 목사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으니, 목사의 한 사람으로서 면구스럽기 짝이 없다. 왜 이런 일들이 발생하게 되었는가?

목사도 사람인지라 때로는 실수도 하고 크게는 죄를 짓기도 한다. 그럴 때에 그 문제를 건강하게 풀 수 있는 총회적, 노회적인 종합대책이 없기에 문제는 언제나 당사자들(목사 자신과 그 문제에 관련된 이들)이 풀어야 하고, 그것이 불가능할 때는 피차 자존심과 명예와 생존의 이유 때문에 극한적인 대립을 피치 못하게 된다.

어느 정도 정치력이 있는 노회라 하더라도, 문제(?)가 발생한 목사들을 임지 교환 식으로 '폭탄 돌리기' 재배치함으로 당장은 해결된 것 같지만, 언젠가는 다시 문제가 발생하도록 방치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목사는 목사를 감싸고 평신도들은 그런 목사들을 '가재는 게편'이라 믿을 수 없어 한다.

어떤 가정 사역자가 "문제없는 가정은 없다. 다만 건강한 가정은 문제를 건강하게 풀 능력이 있는 가정일 뿐이다"라 말했다. 사람이 모인 공동체 치고 문제없는 곳이 어디 있겠는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코앞에 두고, '개혁'을 추상적 개념으로만 토론하다 그치지 말고, '목사를 목사 되게 하는' 행정적 지원이 제대로 갖추어져야 할 때가 아닌가? 순간적인 실수나 인간적 연약함 때문에 문제에 봉착한 영적 지도자들을 일선에서 소환하여 치유하고, 다시 재배치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만 한다.

이미 외국의 참고할 만한 사례들이 많지 않은가? 100회 총회를 자랑만 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구체적으로 '목사들이 오직 목회에 전념할 수 있도록'도와야 한다. 이를 위해 노회와 총회는 보다 엄격한 기준으로 '목사 세움'에 신중해야 하며, 한번 받은 목사는 노회원이므로 노회가 무한 책임을 지고(천주교처럼) 지켜 주어야 한다.

지금처럼 무책임하게 목사를 세우고, 무작정 교회를 개척하며 문제를 오직 재판으로만 해결하려 한다면, 주님의 몸 된 교회 앞에 부끄럽고도 송구한 모습(교회가 목사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모습)은 계속될 것이다.

병든(?) 목사가 존재하는 한, 교회는 계속 병들어 있을 수밖에 없다. 병든 목사를 치유하고 지원할 수 있는 제도를 속히 만들어야 한다. '목사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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