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대한 남은 꿈을 꾸고 싶다

교회에 대한 남은 꿈을 꾸고 싶다

[ 논설위원 칼럼 ]

임규일 목사
2016년 03월 02일(수) 15:11

최근 이웃 교단의 목회자 단체에서 주최한 '한국교회 현실과 과제 진단, 함께 미래로'라는 주제의 공동 대화 시간에 발제자로 참여한 일이 있다. 그 단체에서는 소속 교단은 물론 타교단에서 주의 집중하고 있는 교회의 현실과 과제를 나누고 그 타개 방안 모색을 서로 비교하고 공유하려 이웃 교단들과 목회자들 몇 분을 발제자로 청하였다.

우리 예장 통합측이나 합동 기장 성결교단 등은 결국 일선 교회에서 직면하는 현실과 과제는 서로 다를 게 없음을 발견하였다. 어디서든 으레 지적하는 교인 감소, 교회성장 둔화와 침체, 교회의 공신력 추락, 교인의 고령화와 다음세대 문제, 목회자의 탈윤리성과 타락 양상, 온갖 분쟁과 송사, 전체적인 재정 감소, 없어져 가는 교회학교, 해외선교사 세대 교체와 관리와 재산 운영 문제, 교단 치리질서와 권위의 부패와 지도력 부재, 교회연합과 일치의 실종, 대형교회와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권위의식과 허세와 모든 교회문제 파생의 원인과 실제가 되는 폐해 현상, 다양화하는 삶의 양상들과 분단 극복 및 통일시대 도래에 상응하는 교회 형성 모습을 이루어 내지 못하는 눈먼 교회 현실 등이 그것이다.

당면한 일선 교회들의 현실과 과제를 타개하여 대안을 모색하려 함에 있어 부딪히는 문제는 무엇인가? 어느 교단이든 교단 총회의 치리 질서로서의 행태들이 일선 교회 현장에 연결되지 못하고 괴리감과 소외감, 박탈감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그것은 한국교회 각 교단이든 연합기관이나 단체든 지나치게 정치화 되어 있으며, 어떤 무엇이라도 정치적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이해 관계나 그럴 수 있는 세력들의 타협과 절충과 흥정의 블랙홀에 빠져 교회 본연성에서 멀어져 있음이다. 모두가, 지난 세월 이른바 교회 성장과 부흥의 남은 떡과 부스러기를 나누고 챙기기에만 아직도 연연함이다. 그리고 거기에 대형교회들의 보이지 않는 커넥션이 있다.

대형교회들이 지니고 있는 인원 시설 재정 프로그램 등 자원들이 교단 보다 강하고 연합기관 보다 현실적이다. 교회의 어느 곳 누구든 모두 요셉의 형제들처럼 대형교회들에게 머리 숙여 조아리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모든 문제들이 거의 대형교회들에서 유발되고 있다. 심지어 신학도, 사상도, 역사도 정통도, 언론도 학교도, 교단 본연의 치리질서와 권위체계도 자기 얼을 잃어버린 채 일곱 난쟁이처럼 되어 있는 것이 현실 아닌가?

이런 현행 구조와 현실에서는 종교개혁 500년이 아니라, 500년이 두세 번 다시 온대도 한국교회는 지금보다 더 새로워질 무엇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각 교단과 총회의 현실을 직시하고 문제를 통찰하고 인식함이 서로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필자는 이런 주장과 의견을 피력하여 보았다. 우리 교회와 가까운 수양관에서 어느 교회가 주최한 '전도동력 세미나'에 800~900명 가까운 분들이 참여하여 전도훈련을 하였다. 목회자와 교회 직분자와 교인들의 열심히 실로 특심하였다. 일선 교회 현장에서는 어찌해서든 교회를 부흥하고 교회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고 재건하려는 열정과 간절함이 살아 있음을 본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교회 정치와 그 부스러기를 차지하고 나누고 움켜보려는 이들은 계속하여 그렇게 작동하다 스러져가도록 놓아두고, 일선 교회 현장에서 간절히 갈망하고 분출되는 교회 본연의 경건과 전도와 선교와 구제와 사랑과 긍휼과 사회공의의 살아있는 열망들에 의한(여기에 대해서는 교단의 구별이나 차별이 없으므로) 일치와 연합으로 진솔한 교회 부흥과 재건을 이루어가는 '새로운 한국교회, 새로운 한국 기독교'운동이 형성되어 가야 하리라 본다는 점이다.

여기에 목숨을 내놓을 한국교회의 얀 후스나 루터나 칼뱅이 언제 어디서 출현할까? 기다릴 게 무엇인가? 그대든 나든, 누구든 먼저 나서는 자가 그 사람이 될 것이다. 겨자씨가 자라 세상을 품을 나무가 될 것이다. 어디 있을까? 천국 겨자씨 되는 교회와 교회 지도자여!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