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디아스포라 고려인

20세기 디아스포라 고려인

[ 논설위원 칼럼 ]

오정현 목사
2016년 02월 23일(화) 11:32

시베리아의 찬바람이 한반도의 기온을 떨어뜨렸다고 하던 지난 1월 한참 추울 때 러시아 연해주를 다녀왔다.

블라디보스토크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서서, 그래도 견딜 만 하다고 했다가 뼛속까지 파고들어오는 추위에 자동차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차를 타고 둘러보니 블라디보스토크는 유럽의 어느 도시 같았고, 길에 다니는 사람들은 유럽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언뜻 언뜻 우리와 같은 동양인의 모습이 보였는데 고려인들이라고 했다.

이 고려인들을 '20세기 디아스포라'라 할 수 있겠다. 그들은 이 땅의 가난과 일제의 폭압을 피해 한반도 땅을 떠났고, 러시아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일본군과 맞서기 위해 혁명군의 편에 서서 소련 건국에 일조하였다. 그러나 스탈린은 그들을 의심하여 반동분자로 몰아 숙청했고,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소련의 해체 이후 다시 연해주로 돌아와야 했으나 연해주 땅에 남아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고려인들은 지금도 정착하지 못하고 유랑하는 가운데 있는데, 계속해서 떠돌아 다녀야 하는 그들처럼 기구한 운명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오랜 세월 그들을 외면했다. 아니 돌아볼 겨를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국권을 일제에 강탈당한 우리 조국은 그들의 운명에 국가의 역할을 해주지 못했고, 해방 후의 조국분단과 동서냉전은 우리 남한이 그들에게 다가서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더 이상 우리는 6ㆍ25전쟁 이후의 그 가난하고 힘없는 나라가 아니다. 그리고 고려인들은 남이 아니다. 사실 그들은 우리 민족사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인물들이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고려인들은 구국의병 활동의 선봉에 섰고, 연해주는 국외 구국항쟁의 본거지였다. 조선 강점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격살한 안중근 의사를 비롯하여 항일무장투쟁의 영웅 홍범도, 연해주의 대표 지도자 최재형, 충의대 대장 이범윤, 헤이그밀사 이상설 이위종, 권업회 결성의 주역 이종호,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동녕, 대한제국 무관출신의 혁명가 이동휘, 시일야방성대곡의 필자 장지연, 매서운 필봉의 논객이자 국사학자인 신채호 장도빈 등등.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한번은 들었을 법한 이름의 주인공들이 연해주에서 항일독립투사로 활동했었다.

이들의 독립운동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오늘날의 우리는 빚진 자의 심정으로 그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나그네를 보살피라고 하는 말씀에 순종하여 지금도 유랑하는 가운데 있는 그들을 우리 한국교회는 품어야 한다.

한국교회에게 있어서 연해주는 의미 있는 땅이다. 1907년 제1회 독노회에서 평양신학교 1회 졸업생 이기풍 목사를 제주도에 선교사로 파송하기로 결의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독노회가 1909년에는 연해주에 선교사를 파송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한국교회는 평양신학교 2회 졸업생 최관홀 목사를 연해주에 선교사로 파송했었다. 당시 연해주에는 이미 교회가 있었고, 그 교회에서 목사 파송을 요청했기에 한국장로교회는 최관홀 선교사를 파송한 것이다.

연해주 땅이 바로 이런 곳이다. 우리 한국교회는 이 땅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외교부가 발표한 '2015년 재외동포 현황'에 따르면, 재외동포 수는 세계 178개국에 718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인구대비 재외동포 비율이 14%로 이스라엘, 이탈리아에 이어 세계 3위다. 그 중 90%에 달하는 수가 세계 4강 지역, 즉 중국, 미국, 일본, 구소련에 집중되어 있다. 우리는 미국과 일본에서 살고 있는 재외동포를 선교하여 한인교회를 세웠고, 특히 중국의 조선족 선교에 남다른 열심을 기울여왔다. 이제부터는 러시아를 비롯한 구소련 지역에도 관심을 가지고 선교해 나가야할 것이다. 우리의 또 하나의 민족 고려인은 한국교회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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