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사랑 나눔의 철학

연말, 사랑 나눔의 철학

[ 논설위원 칼럼 ]

김종생 목사
2015년 11월 24일(화) 13:18

연말이 다가오면 우리들에게 익숙한 풍경들이 펼쳐진다. 산타들이 거리노숙자들에게 급식을 하고, 자원봉사자들이 달동네에 연탄을 날라주기도 하며 김장김치를 담아주기도 한다. 이들이 걸친 앞치마와 조끼 또는 어깨띠가 너무 드러나 부담을 주기도 하지만 계절에 따라 이렇게라도 봉사를 하는 것이 다행스럽기도 하다.

1년에 한 번이라고, 의도를 가진 연출이라고, 굳이 드러내어 창피를 주려고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순도라는 잣대로 재보면 100% 순수한 봉사는 찾아보기 어려울테니 적절한 선의 수용이 필요하다고 보여 진다. 성서는 이러한 섬김과 나눔을 생활화해야 함을 강조하면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마지막 심판의 기준은 그러한 나눔과 섬김 여부에 따른다고 선언하고 있다. 따라서 더 아름답고 감동적인 나눔의 봉사를 하기 위해 잠시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런 봉사 계획은 추운 계절에 배고프고 외로운 이들을 조금이라도 도우려는 마음에서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출발한 것이 어느 때부터 받는 자가 주인공이 아니라 주는 자가 주인공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대상 선정까지는 동기가 선하다가 봉사의 시간, 서비스의 방식, 이를 프로그램화 하면서 받는 자를 완전히 대상화 한다. 받는 자의 기분이나 감정, 그들의 욕구 등은 고려의 영역에서 빠져 버린다. 그리고 나의 봉사 인증 샷을 위해 내 필요에 따라 사진 촬영까지 강행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 교회가 하고 싶은 봉사보다 받는 자가 필요로 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봉사가 더 값진 것이 될 것이다.

1998년 IMF(구제금융) 이후 사회의 공론화 된 노숙자들을 돌보는 일은 많은 경우 우리 교회의 몫이었다. 거리노숙자들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식사제공이었다. 그래서 시작된 거리급식은 자원봉사자들이 접근하기 좋은 봉사거리가 되어 온 게 사실이다.

그러다가 구성된 네트워크 종교계 사회복지협의회는 노숙자들의 인권과 정서를 고려해 급식행태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온 잠정적 결론은 혐오감과 낙인감을 줄 수 있는 거리급식을 지양하고 실내급식으로 방향을 선회하기로 하였다. 실내급식도 가능한 한 식탁과 의자를 준비하여 인간적인 예우와 당사자의 자존감을 염두에 둔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것이었다. 밥만 퍼주는 자선행위보다 받는 자의 정서와 인권이 존중되는 봉사로 말이다.

주는 자로서는 보여지는 모습을 크고 모양 좋게(?)하여 선행을 자랑하고 싶어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봉사는 수혜를 입는 이들의 만족도에 따라 성공과 지속여부가 결정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먼저 어떻게 하여야 받는 자가 만족할지, 그들이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또 그 필요가 충족되어지는 과정에서 인격적인 대접을 하고 있는지도 생각해야 한다. 배가 고프기에 밥이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무시와 모멸을 당하면서까지 밥을 얻어먹고 싶지 않은 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피해의식과 많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수혜자들을 섬세하게 배려하지 않으면 봉사를 통해 도움을 주기보다 또 한 번의 상처를 덧입힐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그들이 느끼고 요구하는 것들을 알기 위해 당사자나 관련 된 일에 종사하는 분들의 고견을 청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금년도 나눔과 돌봄은 주는 자 받는 자의 욕구를 반영하여 프로그램을 만들고 진행하는 따뜻한 마음이 요청된다.

우리교회가 '무엇을 했느냐'는 것보다 나눔을 제공받는 이들이 '우리 교회를 어떻게 느끼는가'가 더 중요하다. 주님은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서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고 묻고 있다. 이번 연말 강도 만난 사람이 느끼는 이웃이 우리 교회라고 칭하기에 주저함이 없는 섬김과 나눔과 돌봄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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