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완성은 얼이다"

'교육의 완성은 얼이다"

[ 논설위원 칼럼 ]

홍지연
2015년 10월 27일(화) 14:06

3년 후배와 열애에 빠져 캠퍼스 커플로 대학시절을 찬란하게 빛낸 후 결혼에 골인한 어느 지인이 얼마 전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를 암으로 잃었다.

삼삼오오 장례식장에 옛 지인들이 모여 그동안 잊고 지냈던 세월의 간극을 메꾸느라 분주하던 순간, 한참 아래 연배의 후배가 툭 질문을 던졌다.

"김 상무님 와이프. 예뻤어요?"

모든 여자들의 턱이 뜨악! 장례식장 지하 주차장만큼이나 아래로 떨어졌다. 어찌된 세상인지, 여자는 죽어서까지도 '예쁘냐'는 질문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 전락했는지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그러나 '패.완.얼.' 즉,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는 신조어가 대변하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질문인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청춘이란 이유만으로도 부럽기 짝이 없는 시간을 누리고 있는 젊은이들이 넘쳐나는 대학 캠퍼스도 갖춰야 할 스펙과 씨름하는 현실이 무색하게 '교.완.얼.'이 판치는 공간이다.

좋은 학벌, 취득하기 어려운 자격증, 한두개쯤 구사하는 언어실력, 이 모두를 갖추어도 얼굴이 예쁘고, 몸매가 멋져야 그 모든 교육이 완성된다고 믿는 젊은 인생들이 가득찬 캠퍼스를 마주할 때 마다 가르치는 직업을 때려치우고 싶다는 충동이 불쑥불쑥 솟아난다.

이왕 신조어가 판치는 세상이니 교육학자로서 다른 의미의 '교.완.얼.'을 주장하는 괴팍한 논리를 펼치곤 하는 요즘이다. 이른바 '교육의 완성은 얼이다'이다.

'얼'의 사전적 정의는 어렵지 않다. 정신의 줏대. 그렇다면 줏대란 무엇인가? 사물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일컫는다.

어떤 일을 할 때에 개인이 꿋꿋하게 내세우는 핵심이자 중심이라고 해석한다면 무리일까? 교육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도 않지만, 스펙이나 지식, 정보 수집을 통해 취득 가능한 유형의 결과물로만 치부할 수 없는 가치를 내포한다. 가르치고 배우는 동안 교감하는 인생을 보이지 않는 가치들로 체내화하는 과정이 교육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교육은 자격증의 개수나 졸업장에 써지는 대학 이름으로 완성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교육이란 논리적인 이론과 지금을 살아가는 실제적인 당면 과제 간의 괴리를 현명하게 극복하고 지혜롭게 대처하는 역량을 '실수'를 통해 배우는 시간이자 공간이다. 교육 현장을 벗어나면 즉시 치명적인 과실로 인정되고, 무서운 책임을 요구하는 실수조차도 허용되는 배려가 바로 교육이다.

이러한 실수들로 인해 젊은 인생들이 스스로의 정신적 줏대를 찾아가는 여정이 교육이다. 각자가 터득한 가치를 내재화하여 개인의 가장 중심에 담는 작업이 교육이라고 믿는 학자로서 자신 있게 '교육의 완성은 얼'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간이기도 하다.

어떠한 시련에도 굴하지 않는 정신, 어떤 고통이라도 이겨낼 수 있는 내재적 뿌리가 든든한 가치. 누가 뭐라 해도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게 하는 뜨거운 에너지로서의 '얼'을 찾아내고, 자신만의 '얼'을 무기삼아 인생을 살아가는 원동력을 공급하는 것이 진정한 교육의 목표임을 강조하고 싶다.

결실의 계절, 가을을 맞으며 자신만의 쓰러지지 않는 정신의 줏대를 찾도록 자녀들에게 용기를 불어넣는 부모, 제자들을 격려하는 선생들이 넘치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전심으로 소망해본다. '교.완.얼'의 결실도 함께 맺는 이 가을이 되기를.

홍지연 교수(경민대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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