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 갈등체질을 개선하자

그리스도인, 갈등체질을 개선하자

[ 논설위원 칼럼 ] 논설위원칼럼

신영균 목사
2015년 02월 03일(화) 14:46

세계평화지수 보고에 의하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평화지수는 세계 52위이고, 갈등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 중 2위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간 약 250조원이 갈등비용으로 소비된다고 한다.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사회를 치유할 사명이 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 교회의 존재 이유, 복음적인 생활이 곧 사랑과 평화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수십 년 예수님을 믿고 나아가 목사, 장로, 항존직까지 되었지만 전혀 그 기초가 체질화되지 못하여 사회 치유는 커녕 오히려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어 사회선교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첫째, 헤게모니는 갈등 유발의 발로이다.
안토니오 그람시는 헤게모니를 그의 '옥중수고'에서 계급, 힘의 위력, 관념 등으로 자신의 지배를 유지하려는 수단으로 규정지었다. 쉽게 말하면 '지배권', '주도권'을 의미한다. 주도권 싸움 때문에 누가 크냐고 하는 제자들을 책망하신 주님의 말씀을 우리는 설교도 하고, 그 말씀을 읽거나 듣기도 한다. 나아가 초대교회는 성령님의 주도권만이 확립된 교회이고, 사도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의 주도권 아래 자신을 종으로 복종시켰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교회 내에서 주도권 쟁취를 위해 상호경쟁하고, 헤게모니를 잡기 위한 사람들이 한 둘만 있어도 주님의 몸된 교회는 몸살을 앓는다. 안타까운 것은 그 헤게모니 주도자는 자신이 교회 갈등 유발의 당사자임을 절대로 모르는 질병에 걸려있는 것이다.

둘째, 세상 욕심은 갈등 촉진의 원인이다.
하버드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나 몽골로 가서 선교사역 중인 이용규 선교사는 그의 '더 내려놓음'이란 책에서 "욕심과 집착을 모두 버리라"고 모든 것을 다 내려놓는 삶을 깨우쳐 주고 있다. 그는 힘겹게 쌓아올린 명예나 꽉 움켜쥐고 있는 재물을 모두 내려놓을 때, 비로소 진정한 쉼과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야고보는 모든 다툼과 싸움은 육체의 정욕 즉 욕심에서 온다고 규정했다. 릴 쉘러(Lyle Schaller)는 "전체교회의 3/4의 교회 사역이 비생산적인 갈등의 결과로 인해 심각한 정도로 위축되고 있으며, 그 중 전체의 1/4의 경우가 내부갈등이 심각하여 에너지와 자원을 소진한다"고 하였다. 오늘 우리가 명예욕, 직위욕, 물욕, 자존심 등 욕심을 제어해야만, 칼 바르트가 말한 화해 공동체로서의 교회로 바르게 설 수 있다.

셋째, 파벌주의는 갈등촉진의 매개이다.
사회학자들은 공통적으로 사회악의 근원이 파벌주의 혹은 분파주의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행정학자 사이몬은 조직의 지도자는 제각기 지도력의 숫자가 있다고 한다. 원동기 면허나 이종보통 면허로 대형차를 운전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즉 소수의 감정적 동조자만 이끌 수밖에 없는 교회 지도자는 파당을 일으키고, 그 패거리의 교조적 역할을 하며 즐긴다. 파벌주의는 은혜라고는 하나도 없는 인간 본성적 사고에 깊이 빠진 이분법적인 영적 질병이다. 내편은 무조건 선하고 내편 밖의 사람들은 무조건 악하다는 이분법적 사고로 벽 쌓기를 일삼아 조직의 가장 큰 질병인 혼란 상태인 아노미로 몰아넣는다. 마음에 차지 않으면 진정, 고소, 고발을 교회법정, 사회법정으로까지 나가서라도 이기고야 만다는 추태를 부리며 역사가 정죄할 것이라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윌리암 힐에 의하면 신약성경은 1906절이 갈등사건을 서술하고, 1063절이 갈등에 대한 교훈이나 연관된 말씀이라고 한다. 요한계시록을 제외한 신약성경의 약 40%가 인간관계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 갈등체질을 개선하기 위해서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딛3:2)는 말씀을 꼭 기억하자.

신영균 목사 / 경주제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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