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함을 견디는 능력

지루함을 견디는 능력

[ 논설위원 칼럼 ] 논설위원칼럼

이상학 목사
2014년 12월 08일(월) 19:17

적어도 신앙인이라면 그가 누구이든 갖기를 원하는 공통적 열망이 있다고 믿는다. 바로,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고, 인격이 바다같이 넓어지며, 세상을 꿰뚫는 지혜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그렇게 간절히 열망하나 거기에 이르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자주 낙심한다. 왜일까? 바로 그 과정에 이르는데 꼭 치러야 하는 지루함을 견뎌내는 힘을 기르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해가 다 지나가면서 2014년 초에 결심했던 일들을 생각해 보자. 그 중에서 과연 몇 가지를 우리는 지금도 반복해서 시행하고 있을까? 지속하고 있는 것도 있을 수 있으나, 결심했던 많은 것을 이미 중도에 포기했을 수도 있다. 이는 우리의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어떤 것이 내 몸의 일부가 되어 습관이 될 때까지 반복해서 시행해야 하는 과정이 반드시 주는 지루한 느낌을 수용할 각오가 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버트란트 러셀이라는 영국의 철학자가 '행복의 정복'이라는 책을 썼다. 그는 거기서 행복해지려 하는 사람이 잊지 말고 길러야 하는 한 가지 능력이 있으니, 바로 권태를 이기는 힘이라 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권태를 경험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라 생각하는 반면, 러셀은 권태에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했다. '생산적인 권태'와 '파괴적인 권태'가 그것이다.

파괴적인 권태는 하루하루를 따분하고 무료하게 하며, 삶의 역동성을 떨어뜨려 생기를 잃게 하는 권태이다. 반면에, 생산적인 권태는 얼핏 보기에는 지루하고 따분한 듯 하지만, 그 속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소중한 과정의 연속이다. 러셀은 말하기를, 모든 위대한 일은 이 생산적 권태와 그것이 가져오는 지루함을 견디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예를 들어, 위대한 철학자 칸트는 평생 자기 집 반경 10km를 벗어나 보지 않은 채, 지극히 단조롭고 반복된 일상생활을 했다 한다. 이 세상에 볼 것이 얼마나 많은데 이렇게 재미없는 삶을 살까 싶다. 그러나 그의 얼핏 단순하고 지루하게까지 보이는 삶에는, 인류가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어 주는 위대한 힘이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대단히 통찰력 있는 인식이라 여겨진다. 우리 한국 사람들과 크리스찬들은 종교적 열정이 대단한 사람들이다. 이 땅에 들어온 고등종교 중에 성행해 보지 않은 것이 없다. 불교가 천년간 한국의 정신세계를 지배했고, 그 후 5백년간 유교가 또한 그러했다. 종교가 아닌 생명인 기독교 신앙에 대한 헌신과 급속한 발전이 세계 기독교 선교역사에 남을 만큼 주목할 만한 것임은 이미 상식적 사실이다. 세계 어디를 가도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에 정열과 애정을 쏟아 붓는다. 그만큼 종교심이 대단하다. 그러나 이 위대한 발전이 일순간의 거품으로 끝나지 않고, 이제 영적 유산으로 다음 백년 혹은 천년을 뿌리 내리기 위해서는 한 가지 품을 마음이 있다. 바로, 온전함에 이르기 위해 단순한 반복이 주는 지루함을 견디는 힘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눅 14:28). 신앙의 망대를 세우고자 하는 자, 영이 깊어지고, 인격이 바다같이 넓어지며, 세상을 꿰뚫는 지혜로 쓰임받고자 하는 자는 그것을 이루기 위해 드는 비용을 계산해야 한다는 뜻이다. 아무 것도 이뤄지는 것이 없는 것 같은 단순하고 때로 권태롭기까지 한 영적 훈련의 시간들을 감내할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루함은 따분하고 부정적인 감정이나 그 안에 내 생명을 꽃피우는 하나님의 은총이 들어 있다는 마음으로 새해 새결심을 한다면, 아마 우리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내년 말에 이뤄내고 있을지 모른다.

이상학 목사 / 포항제일교회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