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신앙성과 사회성

교회의 신앙성과 사회성

[ 논설위원 칼럼 ] 논설위원칼럼

최갑도 목사
2014년 09월 30일(화) 15:00

 
미국의 사상가요 기독교윤리학자인 라인홀드 니버 교수는 기독교를 지적하여 흔히 예언자의 종교라고 즐겨 불렀다. 그의 저서 '기독교 윤리학'에 보면 그는 기독교의 본바탕을 두 가지 차원의 조화에 있다고 보았다. 즉 위로는 하나님을 향한 수직적인 신앙의 차원과 아래로는 이웃을 향하는 수평적인 사회성의 차원, 이 두 차원의 조화가 이루어질 때 성서적인 기독교는 실현된다고 주장했다.
 
니버 교수의 기독교에 대한 이런 예언자적 선언은 그 당시 정통주의 교회와 자유주의 교회 양쪽에 다 같이 던지는 놀라운 폭탄이었다. 하나님을 향한 교리적 신앙만을 주장하는 정통주의 교회에 대해서는 이웃을 향한 사회참여의 결함을 지적하고 또 이웃을 향하여 사회 참여만을 강조해온 자유주의 교회에 대해서는 하나님을 향한 입체적인 신앙의 부족을 지적함으로써 양쪽에 모두 대담한 개혁을 선언하였다.
 
우리는 니버 교수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성서적 기독교는 위로 향하는 신앙심과 아래로 이웃을 향한 사회적 책임을 동시에 실천하는 데 있다. 특별히 주님께서 기독교의 수평적인 차원인 세상을 위한 교회의 사회적인 책임을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선한 행실을 비유로서 가르친 것은 대단히 의미가 깊다.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에게 자유를 줌으로써 이웃 사랑의 사회적 책임을 행한 사람은 위대한 제사장도 레위 사람도 아니고 무명의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행하라고 분부하셨다. 이것은 교회에 대한 주님의 경고이시다. 불행하게도 과거의 한국교회는 이 사마리아 사람의 사회적 교훈을 진실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예수의 몸이요 그리스도의 구체적인 표현인 교회는 이웃과 세상의 봉사자로서의 자신의 위치와 그 모습을 지녀야 한다. 자기 이익만을 위한 자기 본위의 종교를 버리고 교회는 이 세상 그 어느 단체보다도 이웃과 사회의 불행에 대하여 강한 책임감을 느껴야 할 것이다. 무책임한 정치가나 사회 지도자가 사회와 국가에 주는 손해보다 무책임한 교회 지도자가 주는 손상은 몇 배나 치명적이라고 보아야 한다. 우리는 사회에 대하여 연대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국가가 망하면 교회도 존재하기 힘들었다. 그러므로 사회적 불안은 기독교에 있어서 남의 문제가 아니다.
 
과거 한국 교회의 경건주의적 현실 포기는 엄격히 말해서 현실 악에 대한 긍정을 의미하며, 사회 문제에 대한 외면은 바로 사회악에 대한 공범을 뜻하는 것으로 생각 할 수 있다. 한국교회 과거의 역사의식은 한마디로 말세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세라는 말에는 두 가지 뉘앙스가 내포되어 있다. 하나는 이 사회를 악한 것으로 규정하는 것이며, 둘째는 그 악을 시정하기 위하여 과감하게 투쟁하려고 하지 않는 미온적인 태도이다. 우리 두 발은 언제나 한국이라는 땅위에 붙어 있어 한 치라도 떨어져 살 수 없다. 우리 교회는 언제나 이 세상 밖에 서 있는 구경꾼이 아님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의 사건은 신앙의 차원에서만 맴돌아서는 안 되고, 이것이 수평적인 윤리적 차원에서 결실하는 데서 그 본질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최갑도 목사 / 성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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