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얼음물

따뜻한 얼음물

[ 논설위원 칼럼 ] 논설위원칼럼

정명철 목사
2014년 09월 17일(수) 10:30

 
차가운 얼음물 양동이(Ice Bucket)가 전 세계를 따뜻하게 만들고 있다. 아이스 버킷 챌린지(Ice Bucket Challenge) 이야기다. 아이스 버킷은 희귀성 난치질환인 루게릭병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이 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을 돕고자 시작된 사회적 캠페인이다. 아이스 버킷은 SNS를 타고 급속도로 전 세계에 퍼져갔고 시작된 지 한 달 만에 미국 ASL협회(루게릭병협회)에는 1억 90만 달러라는 큰 기금이 모금되었다고 하니 사회적 관심과 기금 모금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셈이다.
 
아이스 버킷에 대한 이런 사회적 반향을 지켜보니 이것이 우리 사회와 기독교인들에게 던지는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
 
첫째는 우리 사회 곳곳에는 우리의 관심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소외된 약자들에 대한 관심이다. 루게릭병은 인구 10만 명당 2~3명꼴로 발병하는 질환으로 우리나라에만 대략 2500명 정도의 환자가 있다. 그러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루게릭병 말고도 병명코드 자체가 없는 희귀질환이 141개에 달하며 환자만도 5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발병 원인이나 치료 방법도 모른 채 하루하루 고통 속에서 지내야 하는 난치병 환자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이다.
 
어디 이들 뿐이겠는가? 불평등한 관계 속에 신음하는 중소기업인들과 자영업자들, 상시적인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고질적인 폭력이 끊이지 않는 군대, 외국인 노동자들과 장애인들 등 우리의 관심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들이 이 사회 곳곳에 너무도 많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방 나그네, 고아, 과부, 가난한 자,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 등 소외되고 약한 이들을 향해 늘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씀하셨다.(출 23장)
 
예수님도 가난한 사람들, 세리, 과부, 병자들과 같이 사회에서 소외되었던 사람들과 함께 하셨다.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고 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셨다.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은 예수님의 뒤를 따른다는 말이다.  교회는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이 땅의 소외된 약자들에 대한 관심을 가져갈 조직과 새로운 운동을 계속해서 이끌어갈 주체가 필요하다.
 
둘째는 루게릭병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아이스 버킷(얼음 양동이)이라는 재밌고 기발한 방법으로 접근했다는 것이다. 아이스 버킷은 얼음물을 뒤집어썼을 때 일시적으로 근육이 위축되는 고통을 통해 루게릭병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함께 느끼자는 것이다. 그런데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광경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폭소를 자아내게 하였고,이러한 재밌는 발상과 아이디어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열게 하였던 것이다. 다소 접근하기 어려운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한 것, 이것이 아이스 버킷의 나름 성공 요인인 셈이다.
 
우린 어떤 힘든 문제들에 접근할 때 너무 무겁고 심각하게만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예수님은 비유를 말씀하시며 어려운 문제들을 풀어나가셨다. 간음한 여인을 구해주실 때에도 단순하고 힘이 있는 방법을 사용하셨다. 농성과 집회 또는 정치적 힘을 통해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도 있지만 아이스 버킷과 같은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고 함께 공감하고 소통하는 새로운 운동의 형태도 필요하다. 기독교인이 사회의 각각 현장에서 꼭 진지하고, 무거운 방법으로 사회참여를 할 필요는 없다. 때로는 재미있는 방법으로, 때로는 가벼운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세상을 바꿀수 있음을 아이스버킷 챌린지는 시사하고 있다.
 
물론 아이스 버킷 챌린지가 가열되며 여러 곳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본래의 취지는 사라지고 자기 PR이나 과시로 점점 변질되고 있다는 목소리다. 이러다가 목사님들의 아이스 버킷 챌린지가 나오지 않을까 쓸데없는 염려가 되기도 한다.
 
지금까지 아이스 버킷 챌린지를 통해 천억원 이상이 모금되었지만 정작 73%는 다른 목적으로 사용이 되고 심지어 중역의 월급으로도 사용되었다는 말이 들린다. 처음의 순수성과 관심을 잃지 않아야 순수한 비영리적 기부활동이 될 수가 있다.
 
아이스 버킷 챌린지를 보며 팽목항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아이스 버킷 챌린지는 차가운 얼음물이 피부에 닿으며 일시적인 근육마비 현상을 체험한다. 루게릭 환자들이 평생 이런 고통을 지고 가는데 우리는 아이스 버킷 챌린지처럼 무섭고 시린 얼음물 속에 죽어간 아이들과 가족들을 벌써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지속성과 건강성이 뒷받침 될 때 사회적 운동(Movement) 으로서의 가치가 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12:15) 는 말씀에 귀 기울이며 이 사회를 더 밝게 만드는데 믿음의 사람들의 역할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 세상 속에 빛과 소금으로 부름 받은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정명철 목사
도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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