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의 구원 위한 거룩한 전쟁 선포

가난한 사람의 구원 위한 거룩한 전쟁 선포

[ 선교 ] 세계교회 이야기 - 구세군 1 - 구세군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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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7월 23일(수) 08:56
   
▲ 구세군 창립자 윌리암 부스 부부(아내 캐서린 부스)

세계교회 이야기 - 구세군 1 - 구세군의 기원

조진호 사관
구세군사관학교 교수(교무처장)

구세군 창립일은 1865년 7월 2일이다. 당시 감리교 목사로 활동하던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 1829~1912)는 목사직을 사직하고 아내인 캐서린 부스(Catherine Mumford Booth, 1829~1890)와 함께 런던을 새로운 사역지로 정하였다. 그곳에서 도시 전역을 순회하며 부흥집회 강사로 초청되어 인도하거나 런던에서 활동하던 복음전도 단체들과 함께 사역하였다. 그러던 중에 동부런던 특별봉사위원회의 초청으로 회이트채플(Whitechapel)에 있는 버려진 공동묘지에 세운 천막에서 첫 예배를 인도하게 되었다. 이날 집회는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특별봉사위원회에서는 윌리엄부스에게 동부런던에 계속 남아 자신들의 지도자가 되어 달라고 요청하였다. 윌리엄 부스는 그 집회에서 가난한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발 앞에 무릎 꿇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감동적인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평생의 사명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 이 위대한 사역을 위해 자신과 아내와 자녀들까지 온전히 드리기로 헌신하였다.
 
1865년 7월 2일의 커다란 감동과 영적 소명을 경험한 윌리엄 부스는 18세기 산업혁명의 여파로 도시에 버려진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구원을 위한 거룩한 전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그러나 한 가지 커다란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그것은 윌리엄 부스가 인도하는 집회에서 회개한 많은 사람들을 가까운 교회로 보내지만 그들은 그 곳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하고 또 다시 거리로 나와 방황하게 된다. 윌리엄 부스는 그들의 안타까운 현실을 보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고 그들을 영적으로 돌보는 사역에 대한 필요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얼마 후 이 일을 위한 독립단체로서 '동부런던 기독교 부흥협회(The East London Christian Revival Society)'를 설립하였고, 1868년에는 '동부런던 기독교 선교회(East London Christian Mission)'로 개칭하였다. 1870년에는 이 선교회의 운영과 통치방식에 대한 규정을 채택하고, 1875년이 되서야 비로소 선교회의 운영규정이 단독 날인증서 됨으로 선교회 조직을 온전히 갖추게 되었다.     
 
1878년 5월에 이르러서는 '동부런던 기독교선교회'라는 명칭이 선교회의 연례보고서와 제안서를 통해 '자원군(Volunteer army)'으로 개칭이 제안되었다. 그러나 창립자 윌리엄부스는 '자원'이란 말을 '구원(salvation)'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1878년 8월에 열린 구세군대회(War Congress)에서 1875년에 작성한 날인증서를 파기하고 1878년 8월 7일 제정된 새로운 증서로 대체하기로 하고 선교회의 조직변경을 확정하였다. 이로서 '구세군(The Salvation Army)'이란 명칭으로 1878년 8월 13일에 영국 대법원에 창립문서를 등기함으로 오늘의 구세군(세상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군대)이 창립되었다. 1878년 9월호 '기독교선교회지'에는 '기독교선교회(East London Christian Mission)는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의 불을 온 세계 곳곳에 전하기 위해 구세군(The Salvation Army)을 조직했다'라고 밝혔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구세군은 윌리엄 부스와 그의 아내 캐서린 부스를 공동 창립자로 기억하고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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