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 데 자네이루와 예수님 동상 

리우 데 자네이루와 예수님 동상 

[ 논설위원 칼럼 ] 논설위원칼럼

허원구 목사
2014년 07월 07일(월) 17:10

세계의 관심이 한달 동안 브라질의 제2도시 리우데자네이루에 집중되었다. 그곳에 월드컵 주경기장이 있기 때문이다. 브라질은 포르투칼의 식민지였다. 포르투칼의 항해자 아메리코 베스푸치가 1502년 1월 1일 리우데자네이루의 구아나바라만에 도착했을 때 그에게 이 만은 마치 바다와 같았다. 그래서 '리우 데 자네이루(1월의 강)'이라고 명명했다.

세계 3대 미항 중 하나인 리우데자네이루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코르코바도산 정상으로 올라가야 한다. 그 정상에서 바라다 보는 경치는 가히 세계 제일이다. 더 유명한 것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예수님 동상(Redentor Cristo -구원자 예수)'이다. 높이가 39.6미터, 무게가 635톤의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브라질 독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브라질 교인들의 성금으로 1931년에 완성되었다. 이 예수님 상은 예수님이 팔을 벌리고 서있는 모습이다. 침략이 잦았던 브라질 국민들이 침략자에게서 보호해 주시기를 바라는 평화를 위한 기원이 담겨 있다.

예수님의 동상은 화려한 해변 한쪽편으로 밀집된 빈민촌인 파벨라에서도 볼 수 있고 번화한 도심에서도 볼 수 있고 월드컵의 열풍이 부는 경기장에서도 볼 수 있다. 월드컵 때문에 집이 철거되고 거리에 나앉은 힘없는 사람들에게도 보이고 코파 카바나 해변에서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도 보인다. 리우데자네이루 구석구석에서 다 볼 수 있는 예수님 동상을 보면서 내가 있는 곳의 위치를 잡을 수 있었다.

코르코바도 산의 예수님 동상을 어디에서나 볼 수 있어서 길잡이가 되듯이 교회는 세상 속에서 그렇게 자리매김을 해야 할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이느 부분에서 보아도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드러나는 예수님의 손이 보여야 한다. 그리고 그 손이 모든 부분들을 만지게 해야 한다. 특히 가난한 자들, 울고 있는 자들이 볼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하고 그들을 보고 손을 내미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의 참된 모습이다.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예수님 동상 때문에 길을 잃지 않듯이 이 세상은 교회 때문에 길을 발견하고 희망을 발견하게 해야 한다. 아름다운 리우데자네이루의 콘크리트 예수님 동상은 빈민촌 파벨라에서 줄을 이어 벌어지는 살인사건과 마피아의 횡포를 그냥 바라보기만 하고 있는 브라질교회의 모습을 닮았다.

예수님이 동상으로 존재할 수 없듯이 교회도 동상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예수님은 거기 서 계시기를 원치 않으신다. 오히려 파벨라 속으로 들어 가시고 집 없는 자들 속으로 들어 가시고 축구장 속으로 들어 가시고 코파 카바나 해변으로 들어 가셔서 사람들을 만나기를 원하실 것이다.

한국교회는 더이상 화려한 동상으로 서 있는 것을 거부하고 그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눈물을 닦아주고 텅빈 가슴을 채워주고 길을 인도하며 소망을 주어야 한다. 세상은 더 이상 교회라는 동상의 크기에 관심이 없다. 어떤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인가에 관심이 있다. 무엇을 주는 교회인가에 관심이 있다. 구원자 예수님과 함께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울고 있는 자들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한다. 소망없이 사는 다음세대 속으로 들어가 새로운 비전의 세대를 세워야 한다. 다툼이 없고 분열이 없는 참된 평화가 넘치는 세상을 펼쳐 나가야 한다.

모든 사람이 손가락질하며 비난하고 있어도 아직도 교회는 세상의 희망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리스도의 손인 것을 확신하고 다시 예수님처럼 손을 펴고 치유와 화해와 평화를 위하여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라고 전하자. 코르코바도 산의 예수님 동상이 아직도 손을 벌리고 있듯이 계속해서 우리는 세상을 향해서 손을 넓게 펴야 한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쉼을, 교회 안에서 안식을 얻게 해야 할 것이다.

허원구 목사 / 부산 산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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