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과 일

쉼과 일

[ 논설위원 칼럼 ] 논설위원칼럼

서정오 목사
2013년 07월 10일(수) 11:39

두 개의 부르심 위에 서 있는 교회

예수께서 피곤한 인생들을 안식으로 초청하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안식을 위해서만 우리를 부르신 것은 아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사명으로도 부르셨다. 교회는 '밖으로 불러냄을 받은 자들의 모임(에클레시아)'이기에 교회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이 두 부르심 위에 세워진 것이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세상 속에서 불러내셨는가? 일차적으로 안식을 주시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마태복음 11장 28절 이하의 말씀은 피곤한 인생들에게 주시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초청장이오,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진 인생들을 향한 놀라운 복음(福音)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주님 안에서 쉼은 얻은 자들에게 일어나 다시 지친 인생들을 살리러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살라고 명하신다. 이점에서 마태복음 4장 19절의 제자로의 부르심은 위대한 사명으로의 초청장인 것이다. 안식으로 부르신 인생들을 하나님은 다시 사명을 주어 세상으로 보내시는 것이다.

모이는 교회, 흩어지는 교회

세상 속에서 불러냄을 받아 안식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교회를 '모이는 교회'라고 한다면, 쉼을 얻고 주신 은혜로 사명을 이루기 위해 세상으로 나아가는 교회를 '흩어지는 교회'라 한다. 교회는 하나님 앞에 모여야 한다. 모이지 않고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없다. 쉼을 얻을 수 없다. 하지만, 교회는 또한 흩어져야 한다. 흩어져서 세상을 향해 나아가지 않고는 사명을 이룰 수 없다. 모이지 않고는 힘을 얻을 수 없고, 흩어지지 않고는 사명을 이룰 수 없다.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과 참된 쉼을 경험하지 않고는 온전히 일어설 수 없고, 광야 같은 세상으로 나아가지 않고서는 주님께서 명하신 사명을 성취할 수 없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를 '천국의 소금'이나 '하나님 나라의 빛'이라 하지 않고, '세상의 소금'으로 '세상의 빛'이라 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세상으로 보내노라." 이런 점에서 안식은 꼭 필요하지만, 그것이 목적은 아닌 것이다.

짐이 아니라, 힘이다.

6ㆍ25 때 결혼한 지 6개월 만에 7남매의 맏아들인 남편을 학도병으로 보내고 유복자를 낳아 평생을 기른 권사님이 계시다. 시동생, 시누이 여섯을 엄마처럼 길러 번듯하게 살게 하느라 숨 돌릴 사이 없이 살아온 그분께 물었다. "그 인생의 짐이 얼마나 무거웠습니까?" 그분의 대답이 놀라웠다. "자식은 짐이 아니라 힘입디다."
 
예배가 짐인가? 사역이 짐인가? 성수주일과 십일조를 드림이 짐인가? 봉사가 짐인가? 아니, 하나님을 경외하며 날 위해 기꺼이 죽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그 모든 것이 짐이 아니라, 힘이 된다. 왜 우리는 '안식'과 '사역'을 칼로 두부모 자르듯 하려 하는가? 왜 인생이 피곤한가? 일이 너무 힘들어서가 아니라, 일의 의미를 모르고 삶의 방향이 분명치 않아서이다. 헛된 일에 모든 것을 소진해서 그렇다. 의미 있는 일이라면, 목숨을 걸어도 결코 희생이라 생각지 않는다. 그런 일은 일이 아니라, 쉼이자 힘이다. 이런 의미에서 주님의 두 가지 부르심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다. 제자가 됨은 참된 안식의 자리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 뜨거운 여름, 참된 안식과 기쁨과 힘을 오히려 사역 속에서 경험해 보는 것은 어떨까?

서정오 목사 / 동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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