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우드 선교사 4대 손 피터 언더우드

언더우드 선교사 4대 손 피터 언더우드

[ 인터뷰 ]

김혜미 기자 khm@pckworld.com
2013년 03월 25일(월) 14:56
"증조부는 선교사 2천명중 한명
몇몇 선교사에게 주목해서 안돼"
1885년 부활절 아침에 입국한 언더우드 선교사 4대 손 피터 언더우드
3분의 2가 여성, 자녀의 죽음 등 희생이 잊혀져 아쉬워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 공식적인 한국선교가 시작된지 올해로 1백28주년이다. 2013년의 부활주일을 앞두고 증조할아버지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선교사로부터 4대째 한국에 살고 있는 피터 알렉산더 언더우드(Peter Alexander Underwood, 한국명:원한석)를 부활절을 앞둔 지난 21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파란색 스웨터와 한글 자음으로 디자인된 넥타이를 매고 나타난 그는 "요즘 너무 바쁘다. 내일 모레 해외 출장 때문에 지금도 정신 없는 중"이라며 즐거운 푸념부터 쏟아놓았다. 어느새 백발이 다 된 피터 언더우드는 대학에서 외교학을 전공하고 MBA를 졸업한 경제 전문가다. 한국에서 하고 있는 일도 '컨설팅 비즈니스', 현재 국가브랜드위원회 민간위촉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언더우드 가문의 후손으로는 유일하게 한국에 남아 있는 그는 지난해 3월 자신의 첫번째 책 '퍼스트 무버(도서출판 황금사자)'를 발간하기도 했다. 이 책은 현재 7쇄까지 출간됐는데, 출판계 불황을 생각하면 꽤나 선전한 결과다. 선교사 후손으로서 한국에 대한 애정으로 쓴 책에서 그는 한국의 미래를 '허브(Hub)'로 전망했다. "한국이 창의력의 허브, 혁신의 허브, 성취의 허브, 공정함의 허브가 되기를 원한다"는 것.
 
지난 13일 총회 직원예배에서 언더우드가(家)를 대표해 총회 창립 1백주년 공로패를 수상한 그는 "증조할아버지는 2천여 명의 선교사 중 한사람이었다. 몇몇의 선교사들만 계속 이야기되는 것이 아쉽다"며 "사실 더 대단한 분은 우리 증조할머니였다. 실제로도 선교사의 3분의 2가 여성이었다"고 그동안 부각되지 않은 선교사들에 대한 연구가 계속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그는 "선교사의 희생 중 대표적인 것이 자녀들의 죽음이다. 양화진에만 해도 수십명이 갓난아이"라며 이들의 희생이 잊혀지고 있는 것이 아쉽다고도 했다. 은퇴 후 부인의 고향인 호주로 돌아갈 계획이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이 죽으면 선조들과 마찬가지로 양화진에 묻히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부활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피터 언더우드는 "하나님이 만드신 그대로, 산에 핀 진달래, 벚꽃 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며 "부활은 꼭 봄과 같다. 식물이 죽어있는 상태인 것 같지만 곧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처럼 기독교인들도 부활절에는 새롭게 살아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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