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년간의 교회 공직 생활 마치는 정봉덕 장로

57년간의 교회 공직 생활 마치는 정봉덕 장로

[ 인터뷰 ]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3년 03월 25일(월) 14:12
"평생 총회와 교회, 이 땅의 작은 이들을 위해 섬길 수 있어서 행복"
초대 사회부 총무 역임시 獨 교회 후원금 유치
장로교복지재단ㆍ연금재단 형성에 기틀
본보 전무로도 봉사, 교단 언론 발전에도 기여
 
   
"57년간의 '종로 5가' 생활을 마감합니다. 57년간의 교회 공직 생활을 마치며 되돌아보니 부족하고 사람 됨됨이도 제대로 되지 못한 사람인데 하나님의 은혜와 전국 교회의 지원으로 사역을 큰 어려움 없이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큰 복이고 저는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본교단 사회부(현 사회봉사부 전신) 초대 총무인 정봉덕 장로(염천교회 원로ㆍ86세)가 최근 마이크로 크레딧 운동단체인 '생명의 길을 여는 사람들' 사무총장직 사임으로 사실상 모든 공직을 은퇴하면서 57년간의 '종로 5가' 생활을 마감했다.
 
총회 사회봉사부는 지난 13일 직원연합예배에서 초대 사회부 총무를 지낸 정봉덕 장로에게 감사의 뜻으로 꽃다발을 증정하고 소감을 듣는 시간을 마련했다. 이날 정 장로는 총회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전 직원들에게 식사를 대접했다.
 
1955년 10월 1일 총회 전도부 직원으로 입사하며 교회 공직 생활을 시작한 정 장로는 37년간 재직하며 총회의 여러 부서를 거쳤다. 사회부 총무로 재직하면서 정 장로는 당시 독일교회 디아코니아 후원금을 받아 사회선교훈련 프로그램을 도입했고, 총회 사회봉사상을 시행, 사랑의 현장갖기 운동 등을 시행하며 본교단 디아코니아 선교의 기틀을 다졌다. 또한, 공주원로원을 비롯한 한국장로교복지재단의 사역과 총회 연금재단의 초기 기틀을 형성하는데 실무자로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오이코스신문 창설, 한아봉사회 창립, 마이크로 크레딧 운동 시작 등 한국교회 디아코니아선교의 큰 획을 긋기도 했다. 본보 전무로 언론 발전에 기여한 경력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이력이다.

   
 
"사회부 총무 당시 총회 연금 1천5백만원의 기금을 인계 받아 관리를 하라고 하더라구. 복지재단도 수면상태에 있었지요. 둘 다 그냥 놔둘 수 없어서 발전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어요." 정 장로는 당시를 회상하며 웃음을 지었다.
 
정 장로는 "우리 총회는 군사정권 하에서 투옥된 사람들에게 영치금을 전달하는 일, 그 가족을 돕는 일, 해직 교수 돕는 일, 성명서 발표 등 사회운동을 활발하게 도와왔다"며, "총회는 이 사회의 작은 이와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관심을 갖고 '작은 이들의 벗'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6ㆍ25 한국전쟁 중 동부전선에서 전투하다가 지갑용 신약성경을 주워 읽고 하나님을 믿고, 1951년 진중세례를 받고나서 3년 후 제대해 총회로 오게 된 모든 과정에 하나님이 역사하셨다고 생각한다"며, "평생 총회와 교회, 이 땅의 작은 이들을 위해 섬길 수 있어서 행복하고 감사한 인생이었다"고 말했다.
 
끝으로 정 장로는 "총회를 떠난 후에도 사실상 본교단의 전국교회가 후원하는 단체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항상 총회 직원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며, "부족한 사람이 진행한 모든 일에 총회에서 많은 도움을 주셔서 감사하는 마음을 죽을 때까지 잊지 않을 것"이라며 거듭 감사의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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